짙은 암울함이 묻어났던 전작 < Badlands >에 비해 조금 더 대중적인 선율과 분위기로 돌아왔다. 앨범의 콘셉트는 사후세계에서 펼쳐지는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 파편화된 내면을 디스토피아적 배경으로 표현했던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짓는 설정이지만 할시만의 멜랑콜리한 색을 잃지 않는 선에서 수록곡들의 모서리를 표준적인 팝 문법으로 다듬은 느낌이다. 각 곡들의 평균 러닝타임도 전작보다 조금씩 줄어드는 등 듣는 이의 감성에 보다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구석구석 엿보인다.
잘 꽂히는 멜로디 라인이 먼저 눈에 띈다. '100 letters'에서는 연인의 대화를 담은 주고받기 식 멜로디로 중독성을 배가하고, 짧은 호흡으로 툭툭 던지는 'Now or never'의 훅도 매력적이다. 'Heaven in hiding'의 비장한 후렴구도 감정을 끌어올리며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잘 만든 멜로디를 간드러지게 소화해내는 할시의 가창과 세밀한 리듬감 역시 곡들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래퍼 콰보(Quavo)와 함께한 'Lie'에 흐르는 이국적인 선율을 멋지게 소화하는 비애감 넘치는 보컬은 그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캐시미어 캣을 비롯해 그렉 커스틴(Greg Kurstin),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등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다수 참여해 사운드적 완성도도 높였다. 'Alone'의 배경음은 초반에 웅장하게 등장했다가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보컬을 감싸고, 시아가 작곡에 참여한 'Devil in me'에서는 시아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할시의 보컬과 잘 융합해낸다. 캐시미어 캣은 마지막 트랙 'Hopeless'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세련된 감성으로 앨범의 깔끔한 마무리를 도왔다.
대중성을 가미했다 해도 결국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장 밑바닥에 남는 것은 할시의 안개 낀 목소리와 깊은 우울, 그리고 감성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공감과 위로다. 수록곡들은 비극적인 동화의 삽화처럼 부서질 듯 연약한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를 휘감고 돈다. 체인스모커스와 함께 불렀던 'Closer'에서 밝은 분위기 뒤에 가려진 습기를 눈치 챘던 이들에겐 낯설지 않을 그의 본모습과 그만의 치밀한 음악적 재능이 여지없이 드러난 수준급 팝 앨범.
-수록곡-
1. The prologue
2. 100 letters [추천]
3. Eyes closed
4. Heaven in hiding [추천]
5. Alone
6. Now or never [추천]
7. Sorry
8. Good mourning
9. Lie (Feat. Quavo) [추천]
10. Walls could talk
11. Bad at love
12. Don’t play [추천]
13. Strangers (Feat. Lauren Jauregui)
14. Angel on fire
15. Devil in me [추천]
16. Hopeless (Feat. Cashmere 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