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The Great Impersonator
할시(Halsey)
2024

by 정기엽

2025.01.06

‘위대한 흉내꾼’이라는 표제처럼 각기 다른 아티스트들을 레퍼런스 삼았지만 앨범이 갖춘 색온도는 일정하다. 십수 명을 차갑게 재조명한 데에는 할시의 우울함이 크게 작용했다. 연인과의 이별, 레이블 이적, 루푸스병 진단 등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친 탓이다. 어느 인간이라도 악재를 거듭해 겪으면 나약해지게 마련. 그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이 앨범을 작업했다”고 아픔을 고백하며 앨범의 탄생 배경을 언급했다.


다만 정신적 고통은 대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둔다. 그 관점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핏빛 장미 같은 연결성을 빚어내기는 했지만 고통만으로 채우기에 70분은 길다. 그간 좌절을 딛고 발표한 음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겪어낸 시간을 환원한 작품들이 찬사를 받은 데에는 토로하는 흉금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때 발매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 Chromakopia >가 쌓아온 페르소나들을 파괴하며 한 자기 고백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춘 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할시가 본작의 소구력으로 삼은 장치는 오마주다. PJ 하비, 데이비드 보위 등 뮤지션들의 잘 알려진 초상을 따라 찍은 사진들을 공개하며 복귀를 알렸듯, 각 곡마다 뮤즈를 지정하고 그들의 작법을 따랐다. 하지만 굳이 터놓고 이들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괜찮았을 만큼 영향력은 희미하고 할시의 가창이 더 드러난다. 그는 팝스타다. 남의 가면을 본따지 않더라도 자신의 캐릭터가 큰 연유로, 콘셉트와 자아가 불일치한다. 동명의 브리트니 스피어스 곡의 멜로디를 차용한 ‘Lucky’가 미개척 우주 사이 지구처럼 가장 이해되는 멜로디를 가졌다.


‘Lucky’를 중심점으로 전 트랙인 ‘Hurt feelings’부터 비요크를 닮은 독특한 곡 ‘The great impersonator’까지 좋은 멜로디가 느지막이 활개 친다. 그사이 출산의 기쁨과 공포를 표현한 전작 < If I Can’t Have Love, I Want Power >를 정신적으로 계승하듯 아이와의 대화를 서두에 둔 ‘Letter to God (1988)’은 같은 제목의 다른 곡들보다 뚜렷한 서정성을 품으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인류에게 태양계와 몇몇 특이점을 제외한 우주가 아직 미지의 세계이듯 나른한 록 ‘Lonely is the muse’와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업은 ‘Only living girl in LA’를 제외하곤 초중반이 귀를 잡아끌지 않는다. 여러 아티스트의 색을 입어봤지만 그럼에도 본인을 재창조한 것이 가장 빛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단으로 ‘Hurt feeling’까지 닿는 데 열네 곡을 쏟았을까? 그렇다면 너무 긴 레드카펫이다. 콘셉트 삼은 “흉내”가 역설적으로 음악의 창의성에 대한 핵심적인 답안을 내놓는다. 사본은 원본만 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수록곡-

1. Only living girl in LA [추천]

2. Ego

3. Dog years

4. Letter to God (1974)

5. Panic Attack

6. The end

7. I believe in magic

8. Letter to God (1983)

9. Hometown

10. I never loved you

11. Darwinism

12. Lonely is the muse [추천]

13. Arsonist

14. Life of the spider (Draft)

15. Hurt feelings [추천]

16. Lucky [추천]

17. Letter to God (1998) [추천]

18. The great impersonator [추천]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