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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곡집 Op.1
심규선(Lucia)
2017

by 강민정

2017.07.01

이야기를 조립하는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그의 곡에서 가사는 음률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앞선 위치에 있다. 과거부터 ‘데미안’, ‘오필리아’, ‘Sue(Inspried by ‘Fingersmith’), ‘달과 6펜스’ 등 여러 문학작품에서 영향을 얻어 작곡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이디어를 받아 재창조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짓는 방식으로.

작품에서 그는 행위자(agent)가 아닌 전달자다. 곡 안에서는 분명 ‘나’를 위시해 1인칭을 사용하나 직접적인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사에 있다. ‘~인가’나 ‘~하리’ 같은 종결어미는 고전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반복을 통해 운율을 획득하고, ‘새벽에 핀 은빛 목련인가’(‘파탈리테’), ‘바람이 달을 할퀴던 정원에서’(‘촛농의 노래’)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즘의 색채는 가사에 문학성을 더한다. 이런 문어체 작법은 외부와 경계를 두며 스스로의 위치를 구획한다.

이 독특함은 액자식 구성으로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병치한 ‘요람의 노래’에서 빛난다. ‘그대 없는 파리의 거리는 슬픔뿐이네/나는 이 구슬픈 노래를 요람 속에서부터 들었다네’라는 설명은 말하는 이의 회상이지만, 뒤이은 가사와 ‘눈과 머리카락만은 그 사람과 다름없단다’까지는 분명 그 어머니의 목소리다. 그러나 이는 지연되지 않고 바로 ‘내 요람의 노래’라며 다시 액자 밖을 비춘다.

이같은 관조적 시선은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귀부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파리의 거리’라는 가사, 운명이나 숙명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탈리테’, 마지막으로 ‘음악가의 연인’에서 등장한 하프를 연상케하는 악기의 음색은 이 상상을 돕는다.

사실 음악은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모양새다. 발음과 일체화되는 멜로디 라인은 유려하나 전작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또한 바이올린과 첼로, 아코디언, 하모니카, 아이리쉬 휘슬, 오르골 등 곡 안에서 돋보이는 악기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거나 이야기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곡 조성이 단조로 구성됐고, 코드워크는 귀에 익숙한 완전 5도 음정이나 반음계 진행에 기초한 3,4개 정도의 코드만을 사용하는 방식에 머물고 있다. 믹싱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보컬의 촉촉한 음색을 부각하기 위해 넣은 리버브 효과는 정도가 지나쳐 동굴을 연상시키고, 저음역대 주파수가 강조돼 감상을 방해한다.

가사는 분명히 진일보했다. 민감한 감수성과 짙은 서정이 배인 언어로 만들어낸 서사는 계속 듣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천일 밤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던 세헤라자데를 기다리는 왕의 마음처럼. 그러나 이를 풀어내는 어조에 변함이 없어 자칫 식상해질 우려가 있다. 물론 재밌는 이야기가 최우선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도 역시 중요하다.

-수록곡-
1. 음악가의 연인 
2. 파탈리테
3. 촛농의 노래
4. 요람의 노래 
5. 아라리 
6. 오스카(Lullaby ver.)
7. 음악가의 연인(Inst.)
8. 파탈리테(Inst.)
9. 촛농의 노래(Inst.)
10. 요람의 노래(Inst.)
11. 아라리(Inst.)
12. 오스카(Lullaby ver.) (Inst.)
강민정(jao14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