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Zip
자이언티(Zion.T)
2023

by 손민현

2023.12.01

바깥일에 힘쓰다 귀가한 그에게 음반은 작은 안식처다. ‘양화대교’부터 쇼미더머니 프로듀서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한 ‘자이언티’의 영역과는 다르게 자기 작품 단위에서는 인간 ‘김해솔’이 바라보는 삶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한다. 친절한 초대장 ‘How to use (intro)’부터 시작되는 연말 집들이 < Zip >도 마찬가지. 교류와 확장의 욕구를 뿜어내는 창의적인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막역한 친구로서 따스한 식탁에 앉아 관계에 대한 여러 담화를 늘어놓는다.


음악적 동료들과 함께 지은 집의 골자가 견고하다. 본인 레이블의 프로듀서 슬롬의 가치관이 깊게 새겨져 언뜻 그의 정규 < Weather Report >와도 유사한 분위기다. 재즈가 큰 기둥을 맡고 팝, 알앤비 등 여러 조력자가 추가 장식을 올리는 식. 오랫동안 맞춘 합에 기반한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선율이 입장을 유도하면 금방 익숙한 리듬감과 음색의 주인장이 반가운 환영 인사를 건넨다. 경쾌한 재즈 반주와 독특한 보이스 융화가 빛난 ‘모르는 사람’은 이러한 음반의 지향을 잘 소개한다.


초대 명단을 확인하는 재미는 역시 자이언티 앨범의 주요 콘텐츠. 수용과 확장에 능란한 그의 솜씨 덕에 손님과의 조화도 무난하다. 감성 일렉트로니카로 한국과 접점을 쌓아온 혼네가 프로듀싱한 ‘Unlove’는 완연한 팝 멜로디를, 트럼펫 연주자 베니 베넥 3세(Benny Benack III)와 함께 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보컬과 악기 연주의 교차 선율을 멋들어지게 뽐낸다. 향수 짙은 시부야케를 복각한 ‘V(Peace)’도 상큼한 활력을 돋우는데, 장르 특성과 잘 어우러지는 악뮤가 다소 평면적일 수 있는 흐름에 키치하고 낭만적인 색채를 주입한다.


각 트랙이 부담없이 모여 적절한 농도의 음악 혼합물을 배합해 낸 모양새다. ‘회전목마’와 같은 최근 히트곡만큼 멜로디가 확 눈에 띄지 않을지언정 이런 삼삼한 됨됨이는 곡 하나하나가 귀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도록 돕는다. 더군다나 앨범의 러닝타임에 피로감과 걱정을 느끼는 이들도 편히 안주할 수 있도록 ‘투명인간’과 같은 스킷(skit) 트랙들이 쏠쏠한 재미를 주고, 직관적이고 재치 있는 가사도 청취에 부담을 줄인다. 이 정도면 꽤나 극진한 손님맞이다.


남의 집에서 부산스럽게 흥을 낼 수도 없지 않은가. 아담한 대접 후 문을 닫고 나오면 잔잔한 여운이 몸을 감싼다. 부피가 작다고 생각되거나 그다지 자극이 강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집주인의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우리가 아는 색채는 옅을지라도 재즈를 만난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절제미를 풍긴다. 찬란한 등장과 급성장에 개성의 증축만을 강요받았을 자이언티가 포근하고 단란한 리모델링에 성공했다.


- 수록곡 -

1. How to use (intro)

2. Unlove (prod. HONNE)

3. 모르는 사람 [추천]

4. 내가 좋아하는 것들 (feat. Benny Benack III) [추천]

5. V (Peace) (feat. AKMU) [추천]

6. Not for sale

7. 투명인간

8. 불 꺼진 방 안에서 (feat. 윤석철)

9. 돌고래

10. 해피엔딩. [추천]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