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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 The 6th Album
엔시티 127(NCT 127)
2024

by 정기엽

2024.09.25

태용을 기점으로 시작된 이른바 ‘군백기’를 쇄신할 완벽한 타임캡슐이다. 팀의 고유한 색깔인 네오(Neo)를 덜어내고 전면에 내세운 레트로 스타일과 가사로 집필한 이들의 역사까지. 1995년부터 2000년생 멤버들의 성장기를 함께 한 장르가 엔시티 127의 목소리로 펼쳐진다. 당대 한국에서 유행한 음악을 훑은 만큼 시공간적 각운을 남기며 과거와 미래를 결집한다. 이름부터 서울의 경도를 담은 그룹이 빈티지 문화가 유행하는 2024년 한강의 물결을 제대로 탔다.


< Fact Check - The 5th Album >까지 잔뜩 들어차 있던 힘을 겨울 싱글 'Be there for me'부터 서서히 빼 ‘삐그덕’에 닿았다. 타이틀부터 빠르게 뛰기보다 폼나게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 세대 앞을 지향하던 전과 달리 올드스쿨을 등에 업고 2000년대 초반으로 회귀했다. 꽉 찬 소리를 피하고 투박한 비트와 랩으로 리듬을 만들어 힙합 특유의 거친 면모를 멋지게 살렸다. SM의 결과물이라기보다 힙합 명가로 통하던 YG의 단체곡 ‘멋쟁이 신사’가 생각나는 행보다.


앨범의 시작은 지난 'Fact check (불가사의; 不可思議)'에서 추구하던 강렬한 인상을 잇는다. 이번 음반의 개요를 잡는 ‘Intro: wall to wall’으로 시간을 관통하며 20년 전으로 향하는 역행은 최근 엔시티 음악에 가장 근접한 ‘Gas’에 이르러 막을 내린다. 다시금 이 팀의 현재를 표방하는 뛰어난 역할이다. 엔시티 사가의 핵심인 힙합을 동력 삼으며 이 시간 여행의 넓고 촘촘한 관계망을 엮는다.


이들의 목소리로 재해석한 서울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오렌지색 물감’이다. DJ 오카와리의 ‘Flower dance’나 청춘을 담은 재지팩트의 재즈 힙합이 이끈 2010년을 닮았다. 풍성한 관악기 소리는 곡이 표현하는 한강 다리 위 노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연이어 통통 튀는 베이스, 피아노, 기타가 만드는 신나는 분위기로 중심을 꽉 잡는 ‘Pricey’도 발군이다. 선배 그룹 엑소가 ‘으르렁’, ‘Love me right’ 등으로 선도한 어반 팝을 깔끔히 흡수한다. 앨범 내에서 가장 빛나는 구간이다.


러닝 타임을 지루하지 않고도 이질감 없이 채운다. 난해하지 않은 간결한 타이틀부터 하나의 작품을 묶는 훌륭한 응집력과 장르 소화력, ‘영화처럼’의 뛰어난 보컬 합처럼 최대치로 끌어올린 개별 역량까지. 멤버들의 준수한 솔로 앨범 또한 동일 선상에 함께 놓으면 이번 개혁의 성과는 배로 놀랍다. 복잡한 시스템이 대중성을 포기하던 시절은 끝났다. 긴 여정을 마치고 나니 남은 건 큰 뜻, 더 넓은 수용층을 품기 위해 수년간 유지해 온 뚝심이다.


-수록곡-

1. Intro: wall to wall

2. 삐그덕 [추천]

3. No clue

4. 오렌지색 물감 [추천]

5. Pricey [추천]

6. Time capsule

7. 영화처럼 [추천]

8. Rain drop

9. Gas [추천]

10. 서서히

11. 사랑한다는 말의 뜻을 알아가자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