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은 자아를 위한 지지대를 음악으로 건설한다. 타자를 위한 응원에 집중하는 소녀시대의 노랫말과는 상반된 방향성이다. 솔로 커리어 전체가 액자처럼 당시 태연의 마음을 전시한다. 앨범 발매 당일 라이브 방송에서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것’을 묻는 질문에 “나 스스로가 잡고, 나 스스로가 흔든다”고 한 답변이 그의 심리에 대한 힌트다. 이 질의가 고스란히 음반에 담겨 현재의 태연을 밴드 사운드와 알앤비로 표현한다.
‘Letter to myself’는 두 곡의 속편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To. X’의 X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을 적으며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과 같은 주제를 다르게 풀어 보다 견고해진 마음을 드러낸다. 전작에서 담담하게 뜻을 읊었다면 이번에는 팝 록 사운드 아래 거침없이 맴도는 말을 뱉는다. ‘Hot mess’와 인디 듀오 스웨덴세탁소가 작사한 ‘Blur’ 등도 유사한 장르로 음반의 결속을 돕는다. 그중에서도 끈끈한 연결성을 단단히 묶어두는 건 단연 태연의 힘 있는 가창이다.
뛰어난 노래 실력에 더불어 계절감에 어울려 빛나는 ‘Strangers’와 ‘Disaster’는 괄목할 만한 성과다. 각각 알앤비와 팝 록으로 ’11:11’, ‘Can’t control myself’ 등 대중이 기억하는 태연에 가장 근접하다. 공통점으로 그가 가진 높은 표현력이 발현되는 우수한 곡이다. 먹먹한 정서를 더 젖어들게 만들고 지친 한숨을 생명력 띈 입김으로 탈바꿈시키는 재능. 17년을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역량이다.
이렇듯 손색없는 곡의 모음이지만 < Purpose >, < INVU > 같은 정규작에 비해 무난한 앨범인 것도 사실이다. < What Do I Call You >부터 덜어낸 힘이 지금까지 공석이다.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던 초기에 비해 세 장의 EP가 나란히 비슷한 향기를 공유하는 최근 활동은 확실히 재미가 덜하다. 커다란 이름값에 걸린 기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더라도 높일 만한 작업은 아니다.
태연은 싱어송라이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진정성을 작곡가가 아님에도 가졌다. 꼭 직접 풀어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지난 9년의 활동으로 증명했다. 제아무리 훌륭한 영화를 본들 관객은 감독의 의도만을 따르지는 않는다. 심금을 울리는 데는 배우의 연기력이 꼭 동반하기 마련, 배우 또한 한 명의 창작자다. 자신의 색깔로 재구성한 진심으로 태연은 늘 선명한 명장면을 남긴다.
-수록곡-
1. Lettter to myself [추천]
2. Hot mess
3. Blue eyes
4. Strangers [추천]
5. Blur
6. Disaster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