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년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 정도의 세월을 지나온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만약 그것이 국내에서 펑크 밴드로서 일궈낸 성과라면 더욱이 칭송받을 행적이자 그 자체로 금자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 젊음을 가득 채운 네 청년이 한국 인디의 출발을 선언한 순간부터 구성원 변동 하나 없이 맞이한 서른 번째 생일은 우리 가요사에 응당 적혀야 할 눈부신 공적. 그들에게도 남다를 소회가 궁금해진 이즘이 오랜만에 크라잉넛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넥타이 부대를 등에 업고 온 동네 청춘들을 나만의 스테이지로 호출한 불멸의 명곡 ‘말달리자’와 ‘밤이 깊었네’가 가진 지구력, 후배들의 목소리로 덧입혀진 ‘명동콜링’과 ‘좋지 아니한가’ 속 낭만, 30년 역사가 무색할 만큼 또렷한 무대 위 생기가 한데 섞인 두 시간의 대담. 그들은 꾸준함에 자연스레 따라붙은 전설이란 수식에도 언제나 본질과 그 몸가짐으로 진심을 노래해 왔다. 한없이 겸손한 언어와 변함없는 초심으로 주변인마저 감화시키는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던 그날의 문답은 어째서 크라잉넛이 서른 번째 달력을 넘길 수 있었는지 확신하게 되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신동규)

최근 이즘에서 발표한 ‘21세기 첫 25년을 빛낸 뮤지션’에 높은 득표로 선정되었다.
한경록: 우리 대중음악 흐름 속 시대의 한편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서른 살을 맞이한 크라잉넛을 향해 더 오래,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30년 더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여기에서 30년은 크라잉넛, 인디, 한국 록. 무엇의 30년을 의미하나.
이상면: 되도록 다 같이 갔으면 좋겠다. 우리만 30년 더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뮤지션은 물론 인디 환경 또한 같이 나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생 관계를 바란다.
김인수: 크라잉넛은 30년 더 안 해도 우리 인디는 30년 더 갈 거다. (웃음) 우리가 죽어도 한국 록은 이어진다.
30년을 망라해 크라잉넛이 우리 인디 신에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순 없다. 스스로 자신들의 지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이상혁: 지분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정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나오기 전까지는 펑크 록을 하는 밴드는 정말 드물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런 음악도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나 싶다.
펑크 록이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상혁: 물론 록의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메탈과 하드 록이 주류였고, 이후 시간이 흘러 포크의 문법이 떠올랐다. 그 사이 과도기적 지점에 위치한 1990년대 펑크 록은 소개되지 못했다. 우리도 얼터너티브 록이 들어오게 되면서 더욱 관심을 가졌다.
또 우리 세대가 보기에 메탈은 어려워 보였다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 그치만 록은 하고 싶었다. 그때 ‘누구나 할 수 있어’, ‘DIY 정신’을 보여준 펑크 록은 거친 만큼이나 참 매력적인 장르였다.
이상면: 돌아보니 미싱 링크(Missing Link)였던 것 같다. 과도기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부분을 비워놓고 우리 음악이 흘러간다면 결국 전반적인 물의 흐름에 있어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작게나마 우리가 운하를 놓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밴드에 있어 보컬의 몫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멤버들은 박윤식을 어떻게 평가하나. 또 그가 유독 빛났던 곡을 하나 골라본다면.
김인수: 보컬은 본인에게 잘 맞는 옷을 입어야 하고, 밴드는 자기 음악에 적합한 보컬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윤식은 크라잉넛 음악에 정확히 부합하는, 없어선 안 되는 보컬이다. 첫 앨범에 담긴 ‘안웃겨’나 3집 < 하수연가 > 속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고르고 싶다.
이상면: 한 곡만 고르기 어렵지만, 그래도 ‘밤이 깊었네’의 도입부는 정말이지 최고라 생각한다. 꾸밈없고 진솔한 오소독스의 미학이 잘 담겨 있다.
한경록: 박윤식은 옛날 지포 라이터 같다. 처음에는 뻑뻑해서 잘 안 켜지지 않나. 끊임없이 연습하며 30년째 크라잉넛의 노래를 부르다 보니 이제는 부드럽게 돌아가면서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부싯돌이 되었다. 박윤식만큼 ‘말달리자’를 잘 부르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이상혁: 초창기 < Our Nation Vol.1 >에 수록된 ‘핑크’. 무자비한 매력 속에서도 그 안에 귀여움이 공존한다. 오직 박윤식만이 가능하다.
본인의 생각도 궁금하다.
박윤식: 기타, 베이스, 드럼 무엇 하나 특출난 게 없어 어쩌다 보니 노래를 부르게 됐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돌아보면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다. 30년 동안 열심히 불렀을 뿐이다.

크라잉넛은 멤버가 모두 곡을 쓴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선 각자가 그동안 써온 대표곡을 듣고 싶다.
한경록: ‘밤이 깊었네’와 ‘명동콜링’, ‘룩셈부르크’, ‘서커스 매직 유랑단’. 요즘은 ‘비둘기’도 장난삼아 많이 찾아주시더라.
이상혁: 대표곡이라면 ‘말달리자’, ‘좋지 아니한가’, ‘순이 우주로’. 4집 < 고물라디오 >의 타이틀 곡이었던 ‘퀵서비스맨’이나 수록곡 ‘필살 Offside’, ‘마시자’도 있다.
이상면: ‘뜨거운 안녕’, ‘미지의 세계’, ‘신기한 노래’가 떠오른다. ‘가련다’와 ‘개가 말하네’도 빠질 수 없다.
박윤식: 제일 곡 수가 적다. ‘안웃겨’ 정도.
김인수: ‘지독한 노래’,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 ‘백구두’, ‘사망가’. 키움 히어로즈 응원가인 ‘영웅 출정가’도 썼다.
이렇게 모두가 곡을 쓴다는 점이 크라잉넛의 장수 비결이 아닐까 싶은데.
한경록: 100% 동감한다. 아무리 작곡을 잘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결국 한계치는 100이다. 또 우리만큼 오래하다 보면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린 저마다의 물감이 있다. 각 구성원의 색깔을 드러내거나 다 같이 섞이면서 우린 500 그 이상의 시너지를 만든다. 또 이렇게 작업하다 보니 서로의 작곡과 그 구상력을 많이 배우기도 한다. 멤버들은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멘토다.
이참에 한 앨범당 한 곡씩 크라잉넛의 숨은 명곡을 골라 달라.
이상면: 첫 앨범에선 ‘펑크 걸’, 2집 < 서커스 매직 유랑단 >에서는 ‘다 죽자’, 다음 < 하수연가 >에서는 ‘지독한 노래’, 4집 < 고물라디오 >에서는 ‘퀵서비스맨’, 5집은 ‘뜨거운 안녕’, 6집 < 불편한 파티 >에선 ‘귀신은 뭐하나’를 고르겠다. 아, 제가 만든 ‘가련다’도 들어달라. (웃음) 7집과 8집은 각각 ‘여름’과 ‘심장의 노래’다.
크라잉넛의 첫 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말달리자’일 테고, 두 번째로는 ‘밤이 깊었네’가 떠오른다. 스스로 세 번째 전환점을 선정해 준다면.
이상면: 5집 < OK 목장의 젖소 >의 타이틀 곡 ‘명동콜링’은 사실 기대에 못 미친 결과였다. 당시 대중이 크라잉넛에게 바란 모습은 감성보다는 속도였던 것 같다. 근데 작금의 경연 프로그램 덕인지 뒤늦게 많이들 찾아주시더라. ‘좋지 아니한가’도 그렇고. 이 두 곡의 재생산을 공동으로 고르겠다.
2010년을 걸쳐 하나쯤 더 히트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이가 작용한 걸까.
박윤식: 예전에는 선배들의 조언을 잔소리로 받아들이고 일부러 반항심을 갖기도 했다. 그만큼 어렸다. 그 덕에 그 시절만의 노래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에게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똘끼’라는 게 참 중요한 건데, 많이 사라졌다. 이젠 어딜 가도 나이가 많은 편이니 말이다.
크라잉넛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지’와 같은 형체 모를 낭만주의가 느껴진다. 의도된 방향성인가.
한경록: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에는 일종의 반항이 서려 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우리만의 언어로 만들어가는 즐길 거리, 표현 거리 같은 것들이다. 다들 스펙 쌓고 열심히 사는 동안 우리는 ‘싫어, 노래할래’를 외쳤다. 꼭 위만 바라보고 사는 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하고, 때론 소리도 지르며 소위 ‘이딴 식’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걸 낭만이라 느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크라잉넛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상혁: 초창기에는 앞서 말한 희한한 똘끼가 있었고, 그 뒤로는 라이브에 무게를 두려 했던 점이 도움이 됐다. 사이사이 꾸준하게 앨범도 내다보니 다행히도 대중이 잊지 않았다.
한경록: 예전부터 무언가 유행한다고 하면 괜히 울렁거렸다. 반대로 가고 싶고, 왠지 싫은 느낌. 그래서 청개구리처럼 일부러 다르게 하려 노력했다. 신에 유행이 생기면 밴드들이 그쪽으로 쏠리는 면이 있는데 우리는 애써 그러지 않으려 했던 점이 차별화를 만든 것도 있다. 말하자면 집단 유행과의 분리랄까.

후배들의 잇따른 재해석에 힘입어 동력이 더해진 면도 무시할 수 없다. 크라잉넛이 생각하기에 우리 곡을 가장 잘 풀어낸 가수는 누구인가.
이상면: 카더가든이 부른 ‘명동콜링’이 물꼬를 튼 게 아닐까 싶다. 편곡을 정말 잘했더라. 덕분에 사람들이 ‘크라잉넛 노래도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라는 걸 인식한 듯하다. 최근 ‘좋지 아니한가’를 부른 유다빈밴드도 도입부에 이러한 영향이 보인다. 모두 고마울 따름이다.
한경록: 사랑 노래를 비롯해 감정선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쑥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밤이 깊었네’의 노랫말도 ‘나의 그대여’가 수줍어서 ‘나의 구두여’로 비튼 것처럼 ‘명동콜링’ 또한 애절한 음악임에도 우리 식으로 경쾌하게 바꿨다. 카더가든의 커버를 듣는데 원래 의중을 파악하고, 웃음기 없이 쭉 간파당한 느낌을 받았다. 훌륭한 리메이크였다.
지금까지 크라잉넛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김인수: 항상 즐거운 편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작품이 나왔을 때 유독 그렇다. < OK 목장의 젖소 > 작업 당시 마스터 파일을 받았을 때가 떠오른다. (이유가 있나) 군복무로 인해 2년 동안 앨범을 만들지 못했으니 아쉬움이 컸다.
한경록: 4월에 나온 싱글 ‘허름한 술집’ 발매 기념 공연을 홍대 라이브 클럽 제비다방에서 마쳤다. 공연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 공연장 밖으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떼창을 하더라. 모두가 ‘좋지 아니한가’를 부르는데 울컥했다. 특히 유모차를 끌던 한 어머니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신호가 바뀌자마자 점프를 하면서 대열에 스며드는 모습이 있었다. ‘저분도 어렸을 때 우리 공연에 왔을 텐데’부터 ‘저 아이도 우리 노래를 들으며 크겠지’하는 생각이 드니 뭉클했다. 즐거움은 보람과 직결된다.
이상혁: 맥주를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공연으로 외국을 나가면 숙소에 짐을 풀고 맥주 한잔하러 갈 때가 그렇게 좋다. 멤버들과 끈끈하게 함께한다는 느낌이 든달까.
박윤식: 답변을 빼앗겼다. 시원한 맥주. 한국이든 외국이든 공연 후 땀 흠뻑 적신 상태에서 마시는 그 한 모금은 짜릿하다. 더구나 외국의 경우에는 새로운 공간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이니 더욱 기억에 남는다.
이상면: 2023년 링컨 센터와 뉴욕한국문화원이 주최한 < K-Indie Music Night > 페스티벌이 기억난다. 관객의 반응이 열정적이었다. 공연차 미국에 자주 가곤 하는데,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인에 대한 무례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공연 다음 날 들른 근처 옷 가게의 점원이 K팝을 좋아한다며 한국말로 다가오더라. 문화가 가진 힘을 느낄 때 즐겁다.
최근 몇 년간 밴드 붐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거듭되고 있다. 크라잉넛이 눈여겨보는 후배들이 있다면.
한경록: 요즘은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나가 떠오른다면 극동아시아타이거즈. 직선적인 청춘의 맛이 강한 편인데 그것도 오늘날의 느낌이 아닌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인 1990년대의 감성이 있더라.
김인수: 오이스터즈도 괜찮았고, PCR이란 밴드도 기억난다. 사이키델릭과 개러지한 요소가 혼재된 느낌을 재밌게 들었다.
마지막은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각자의 인생 밴드가 궁금하다.
김인수: 인생 밴드라면 단연코 슬레이어(Slayer)다.
한경록: 산울림을 고르겠다. 아름다운 음악은 물론 가사를 비롯해 예술가로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태도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상혁: 머틀리 크루. 뉴키즈 온 더 블록의 팬이었던 중학생 시절, 친구가 들려준 < Dr. Feelgood >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박윤식: 메탈리카다. 본격적으로 록에 빠지게 된 시작점이었고, 곧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상면: 국내에선 송골매를 뽑고 싶다. 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따라부르던 시간이 묵묵히 저변에 깔린 듯하다. 해외에선 신 리지(Thin Lizzy)다. 그의 음악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염동교, 신동규, 박승민, 박수석
정리: 신동규
사진: 박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