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 “일해라 정기석”이란 밈까지 낳을 정도였던 8년 전의 사이먼 도미닉과 힙합으로부터 멀어진 듯했던 근래의 사이먼 도미닉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자리한다. 피처링과 싱글로나마 실력을 발휘했던 과거와 달리 최신 곡이 2022년의 ‘TTFU’이라는 아이러니. 기다림마저 희미해질 무렵 급작스럽게 들려온 신보 소식은 관심과 의문을 동시에 증폭시켰다. 관건은 명확하다. 세 글자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렸던 암실의 고백에 버금가는 충격을 만들 수 있는가? 또 어느 때보다 길었던 휴지기 동안 무뎌진 것은 아닌가?
각각 디크로와 구스범스가 중심을 이뤘던 < DARKROOM : roommates only >와 < 화기엄금 >처럼 타미 양이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했다는 대목부터 눈길을 끈다. 닥스후드와의 합작 < The Race 777 >을 필두로 최근 트랩 신에서 굵직한 작업물들을 내놓았던 그는 선배의 부름을 받고 중후한 웨스트코스트 풍으로 방향을 튼다. 주무대가 아닐지언정 여백을 활용하는 구성은 동일하기에 ‘R.a.p’와 ‘1에서 10’같이 간결한 드럼으로 그루브를 형성하려는 노림수가 적중한 경우가 존재하는 한편, 너무 많은 부분을 비워 버린 여남은 루프는 결국 그 위 얹히는 랩에 성패를 맡기고 흘러간다.
그리고 주인공은 한결 여유롭게 마이크를 든다. 사이먼 도미닉 하면 떠오르는 중저음의 래핑은 빠른 템포의 ‘후반전’을 제외하고 시종일관 낮은 진폭을 유지한다. 초입의 ‘Dom’과 ‘Simon says’에서 드러나듯 특기를 앞세운 노련한 퍼포먼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법이 큰 변화 없이 40분 내내 반복된다는 것이다. 장르의 맛을 위해 구사 가능한 목소리의 폭을 좁힌다는 선택은 피로감을 주기도 했던 2020년 즈음 버스(verse)의 하이톤을 돌이켜 보면 이해가 간다. 다만 허니케이골드와 권기백이 뿜어내는 에너지 앞에서는 탄력의 격차가 두드러져 기세가 꺾일 따름이다.
물론 모든 복귀작이 < 살아숨셔 4 > 같을 필요는 없다. 허나 작품 전반의 표현은 전날에 머물뿐더러 오히려 더 평평해졌다. 단순한 브래거도시오로 가득 찬 라인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긴 어려우며, 특히 과장된 남성성을 내세운 ‘느껴’ 속 사이먼 도미닉의 구절과 중간 삽입된 여성의 음성은 그야말로 난감하다. 이센스의 ‘Next level’을 연상시키는 자전적 트랙 ‘PPAP’마저도 데뷔 초의 기억을 더듬는 데 그치며 한층 흥미로울 법한 30대의 이야기는 건너뛴다. 틀 안에 위치한다는 점에선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적어도 성공 이후의 외로움이라는 상이한 감정을 내비치는 ‘Lay low’만이 홀로 겉도는 구도다.
중심의 부재를 과잉과 공백으로 대신한 결과다. 건재함을 자랑하려 꽉 채운 가사는 종종 비트와 묘한 어긋남을 자아내며 공허히 메아리치고, 분명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했음에도 느슨한 훅 메이킹이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사실 리스너와 대중이 그에게 바라는 감각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거창한 작가주의 혹은 서사보다는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능란하게 뱉는 랩. 이를 충족할 듯 충족하지 못해 생겨난 불협화음이 < Onyx >를 짙게 감싸고 있다. 그렇게 오랜 침묵 끝의 정규 앨범은 사뭇 건조하게 수렴된다. 사이먼 도미닉의 톤이 대단하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명제의 빈약한 재증명으로.
-수록곡-
1. Dom
2. Simon says [추천]
3. 느껴 (Feat. Masta Wu)
4. 감성
5. 후반전
6. PPAP
7. No.1 stunna (Feat. 100KGOLD) [추천]
8. 1에서 10
9. R.a.p (Feat. 권기백) [추천]
10. Shhh (Feat. TOMMY YANG)
11. Lay low
12. Play on play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