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리온3 >는 한국 힙합 역사를 관통하는 그해의 수작이었다. < Garion 2 > 이후 지나간 14년을 뒤로 하고 성대하게 갖춘 프로듀서진이 적재적소에 훌륭한 비트를 제공했으며 타이거JK부터 스카이민혁을 아우르는 객원 래퍼가 세대 연결 또한 도모했다. 거대한 스케일에 녹아든 듀오의 주요 변화는 딱 두 가지. 소폭 늘어난 영어 비중과 간결한 훅 메이킹이 새 시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베테랑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과작 꼬리표를 떼어내려는 듯 금세 제작한 신보는 상술한 기조를 유지하되 전작과는 반대로 간소한 규모를 내세워 한결 가깝게 다가선다.
메타가 전담한 프로덕션은 다소 이질적인 ‘Rawtype’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이하다. 상당한 볼륨을 자랑했던 첫 두 정규작에 비해 강렬한 지점이 적다는 인상이 있으나 결국 이들이 의도한 미학이 오래 합을 맞춘 연주자들과의 단출한 협연임을 고려하면 수긍할 만한 소박함이다. 모든 트랙을 3분 안팎으로 꾸린다는 선택도 단조로움이 부각될 틈을 줄였다. 시류를 타지 않는 비슷한 결의 곡들이 물처럼 흘러가는 와중 도리어 명백히 과거를 가리키는 대목이 흥미롭다. 각각 다양한 효과음과 보사노바 기타로 2000년대 초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프슈프슈 (Pshhh pshhh)’와 ‘Lita (Love is in the air)’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메타의 절묘한 박자감이 합쳐진 ‘프슈프슈 (Pshhh pshhh)’는 작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래핑이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느슨한 기악에도 퍼포먼스는 여전하다.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특징은 가사 속 동시대성에서 나온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AI 등을 직접 언급하는 ‘Routine’의 경우 여태까지 가리온에게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기에 유독 생경하게 느껴진다. 또 ‘Raindrops’를 비롯해 50대에 접어든 두 중년 래퍼가 마주한 현실을 잘라내어 전사하는 식의 서술은 공감대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이전 작업물의 컨셔스 랩 혹은 회상이 비유와 상징의 형태로 보편성을 획득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허나 이는 세월을 받아들인 현재를 솔직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j에게 (To j)’에서 세상을 떠난 아티슨 비츠를 추억하는 버스(verse)가 끝난 뒤 연주만 이어질 때의 여운도 그 연장선에 있다.
타이틀의 중압감은 가리온이라는 이름 아래 쌓인 유산만큼 크고 무겁다. 2년 전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도움을 빌렸다면 이번에는 덜어내기를 택했다. 시침을 거꾸로 돌린 사운드와 나이듦을 수긍한 구절의 조합은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이에게만 가닿겠지만, 시리즈가 지닌 중후함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동시에 짧은 공백기와 준비 기간이 암시하듯 < 가리온4 >는 전설의 다음 국면을 알리는 시작점으로도 자리한다. 고목이 다시 새순을 틔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다가올 계절을 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