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말놀이가 좋은 가사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특히 다른 음악보다 많은 낱말을 허용하는 힙합은 솔직한 서사로 인기를 얻는 동시에 불필요한 수식이 끼어들지 못하게 높은 주의력도 요한다. 세대교체를 반복하며 언어가 갖는 가치도 줄고 있지만 본래 래퍼의 기량은 섬세한 작사로부터 나온다. 박자감을 끌어내기 위한 운율과 단어를 고르는 감각, 매끄러운 문맥 안에서 감탄을 부를 재치. 랩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증명 수단이었던 바(Bar/마디)야말로 유년 시절을 골든 에라와 함께 했던 팔로알토가 꺼낼 적당한 골동품이다.
붐뱁 리듬과 중저음 래핑이라는 이상적인 조합만으로도 음반은 순항한다. 드럼리스 스타일을 차용한 ‘Be on’은 이십 년을 서른두 마디로 압축한 고밀도 버스(verse)가 몰입감을 높이고 최근의 음악 산업 세태를 서늘하게 묘사한 ‘Rock right now’는 1990년대 뉴욕 힙합의 거성 몹 딥과 갱 스타를 연상하는 투박함으로 전반부의 중추 역할을 수행한다. 화려한 변주나 외도 없이 꾸준한 농도로 존재감을 확보하는 방식은 낙차 없이 우상향을 바라보던 그의 전체적인 경력과도 궤를 같이한다.
유행과 흐름에 민감한 시장에서 수요에 맞춰 누구보다 기민하게 움직여왔던 팔로알토는 이 앨범에서 방향을 틀어 힙합의 과거를 들춘다. 그에 반해 피처링에 이름을 올린 ‘Modern arts’의 오이글리와 ‘We must apply’의 알트는 짧은 경력에 비해 이질감 없이 옛 작법을 소화하며 스타일의 근간을 지킨다. 앨범의 최고 백미인 ‘Nostalgia’에서 활어처럼 날뛰는 은둔 고수 마이노스의 진가도 귀에 들어온다.
완성은 답보로 연결되기 쉽다. 스스로 상한선에 도달했다고 느껴도 바깥에는 끊임없이 위로 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두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그의 발전이 멈추지 않은 이유는 일련의 역사를 거친 힙합 음악에서 자극적인 소리 대신 훌륭한 가사를 토대로 음악의 지속성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불혹을 넘긴 ‘언더래퍼’의 새롭지 않은 말투가 새로운 시대에 닿을 매개체를 찾는 과정, 여전히 팔로알토가 진실한 문장을 다듬는 연유다.
-수록곡-
1. Light saturation
2. Be on (Feat. JUPITER KIM) [추천]
3. Modern art (Feat. oygli) [추천]
4. Rock right now [추천]
5. Castle (Feat. Gu is 9)
6. We must apply (Feat. Alt)
7. Nostalgia (Feat. Minos) [추천]
8. 언더래퍼
9. 511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