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는 일종의 암시이다. 가슴에 새겨진 멍처럼 보랏빛으로 응어리진, 표현하지 못하고 감추어 왔던 서러움, 흐려진 시야와 환각 상태를 보여준다. 혼란스럽게 방황하다가 이내 몸이 이완되어버린다. 이는 '기억상실' 이라는 제목을 환기시켜주는 동시에, 곡의 전체적 분위기를 물들인다. 일종의 조명을 킨 것이다. 무대 위의 공기, 주인공들의 모습이 기억 상실이라는 주제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거미는 독백한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그 남자는 듣지 못한다. 아무도 듣지 않을 혼잣말이 더욱 슬픈 것은 동정조차 얻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더욱이 그녀가 노래하는 슬픔이란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완전히 끝나버린 사랑이다.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위로는 청승맞은 속류일 뿐이다. 단지 너무 아프기만 하다. 기억 상실만이 고통을 누그러뜨릴 유일한 길이다. 이처럼 '기억상실'은 실연의 고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다. 감상자들은 한 여자의 가슴 아픈 고통과 방황을 본다.
그러나 이 노래의 결정적인 허점은 그게 왠지 남의 얘기로만 들린다는 것이다. 분명 그녀에게 동정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거기까지이다. 과도하게 영화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떠난다고 그래서 떠나라고 말했어” “손가락 열개를 다 접고 애써 하루를 또 세어도” “자꾸 멀어버리는 내 눈은” 같은 설정들. 그것들은 너무 인위적이서 오히려 누구든지 그것이 음악에서만 존재하는 거짓말임을 알게 한다. 작품의 감동이란 내 안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러한 시선을 모르는 것은 거미 혼자뿐이다. 대중들의 마음 속 깊은 동질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소외된다.
보컬도 이러한 면들이 드러난다. 그녀는 흐느끼고 통곡하다가도 자꾸만 가창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한 여자의 고통을 듣다가도, 전혀 슬프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 그러니까 뮤지션으로써의 욕망을 듣게 된다. 순간순간 주인공의 이중인격을 목격함으로써, 감정의 이입이 깨어진다. 하지만 유순한 대한민국 대중들은 결코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녀는 목적이 어쨌든 간에 단지 눈물을 흘리기에 동정의 시선을 얻어내고야 만다.
곡의 가사와 구성 자체가 거미의 실력을 뒷받침 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보컬은 아직 허영심을 버리지 못했다. 거미는 더욱 진실하게 대중들에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곡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오만으로 왜곡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티스트의 권위는 대중들 스스로가 세운다. 인위적으로 만든 고통의 드라마로써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수록곡-
1. GUMMY SKILLS (INTRO)
2. 하고 싶었어
3. 내 곁에 잠이 든 이 밤에
4. 날 그만 잊어요
5. 기억상실
6. LOVE AGAIN
7. TONIGHT
8. DANCE DANCE
9. 그녀보다 내가 뭐가
10. SO MUCH
11. WITCHES
12. ROUND 1
13. 인연
14. IT DON'T MATTER NO MORE
15. SINGING MY B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