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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으니... 됐어
거미
2014

by 윤은지

2014.07.01

이 앨범이 드라마 OST 모음집이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트랙, 특히 타이틀곡 '사랑했으니..됐어'를 시작으로 '혼자이니까'를 지나 자작곡인 '사랑해주세요'로 연결되는 발라드 넘버들은 마치 미니시리즈의 결정적인 장면에 등장해야 할 것 같은, 혹은 이미 등장한 것 같은 노래들이다. 쉽게 파고드는 듣기 좋은 멜로디, 노래에 배인 비련의 정서, 그 감정선을 백퍼센트 전달하는 호소력 있는 보컬은 어긋남 없이 조화를 이루며 꽤 들을 만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자격을 갖춘다.

아쉬움이 밀려오는 건 이 드라마 친화적인 앨범이 거미의 신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도 4년 만의 컴백 앨범인데, 작품 속에 거미는 없다. 굳이 거미의 노래일 필요가 없는 노래들만 가득 있다. 가사를 빌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무색무취하다. 덕분에 대중성은 더 확보했을 수 있으나 그렇게 얻은 인기가 거미를 향한 구체적인 외침일 리는 없다. 굳이 유행을 향해 노골적으로 손을 뻗지 않아도, 그는 자기만의 색을 갖고서도 충분히 대중성을 흡수했던 가수였다.

물론 요즘은 거미의 개성이라 할 만한 진한 흑인 감성이 예전만큼 환호 받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힘주어 알앤비 창법을 구사했던 보컬들도 조금씩 목소리의 힘을 빼고 있는 게 현재의 추세다. 그리고 대중 가수는 이동하는 대중의 취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역할이 있다. 대중가수로서의 거미도 과거의 창법에서 벗어나 최대한 담담하려 애를 쓴 듯하다. 박화요비가 작사 작곡한 '누워'는 보컬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박유천이 목소리를 보탠 '놀러가자'는 덕분에 편안하다. 그런데 톤 다운에 대한 강박이 지나쳐버린 탓인지 몇 군데에서는 특유의 톤이 아예 제거되어 버렸다.

사람이든 음악이든 매력을 지니려면 최소한의 자기 컬러는 필수다. 조심해야 할 건 색의 완강함이지 색 그 자체가 아니다. 개성의 수위를 낮추는 것은 대중에 대한 배려이자 더 넓은 영역을 아우르기 위한 자기 확장으로의 전진일 수 있지만,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다수의 획일된 개성으로 편입하는 것은 오직 몰개성이다. 몰개성한 거미의 두 번째 미니앨범은 마치 특별함을 포기하고 평범해지려는 개인을 보는 것 같아 슬프다. 곡마다 담긴, 말하면 입 아픈 명불허전의 가창력은 그래서 더 안타깝게 들린다.

-수록곡-
1. 놀러가자 (Feat. 박유천 of JYJ)
2. 지금 행복하세요
3. 사랑했으니..됐어
4. 혼자이니까
5. 사랑해주세요.
6. 누워 (Feat.로꼬) [추천]
윤은지(theothers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