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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Bloom
거미
2005

by 이대화

2005.09.01

만약 '아니'를 들으며 스피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면, 난 아마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바닥을 탁탁 치며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저기요, 조금만 좀 가만히 있어 봐요...”

거미는 노래를 잘하지만 너무 과잉하는 경향이 있다. 시종일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아니'를 들어보면 판에 박힌 패턴에 진부한 설정의 노랫말에 불과한데도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마냥 감정에 북받쳐서 노래한다는 인상을 준다. 극적인 구성이 빈약한 시나리오에 억지 눈물을 자아내는 현악 스코어가 가미된 느낌. 딱 그 정도의 감상에 적당하다.

후반부에 과도한 애드리브로 곡에서 완전히 이탈한 듯한 느낌도 꽤 부담스럽다. 도대체 '아니'라는 곡에 대해 어떤 해석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진한 감정들을 쏟아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좋은 연기자'라면 자신의 스타성을 벗고 극 속의 캐릭터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노래를 함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해석을 통한 연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음악계에는 소위 '좋은 가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끝까지 가창력만 앞세우려 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 발성과 기교 하나하나에 아주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을 테고, 듣는 입장에서보다야 훨씬 많은 고민을 거친 결과물이겠지만 자연스러움이 덜하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아쉬움은 가창력 이외의 부분에서도 느껴진다. 거미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가창력에 비해 노래가 잘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휘성의 '안되나요', 김범수의 '보고 싶다'처럼 널리 불려질 만큼 호소력 있는 시그니처 송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런 생각이 비단 개인적인 편견만은 아닐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번 앨범에서도 아쉬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Holic'에서는 스토니 스컹크와 함께 레게 스타일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을 만한 좋은 멜로디, 좋은 가사 한 마디가 절실히 아쉽다. 거미의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 같은 대중적 발라드가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해서인지 나머지의 새로운 시도들에도 별로 눈길이 고정되지 않는다. 노래를 잘해야 음악이 산다는 말이 있지만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실력과 매력 사이엔 알 수 없는 심연이 있는 듯하다.

-수록곡-
1. Gummitro
2. Holic ( 작사 : 최갑원 / 작곡 : 김도훈 )
3. 손 틈새로 ( 최갑원 / 김민 )
4. 아니 ( 최갑원 / 서빛나래 )
5. 어른아이 ( 최갑원 / 김도훈 )
6. 오늘은 헤어지는 날 ( 최갑원 / 김민 )
7. Trap ( 휘성 / Soul Shop )
8. 평균 ( 최갑원 / 윤승환 )
9. 혼자만 하는 사랑 ( 최갑원, 이승민 / 이영현 )
10. 실수 ( 최갑원 / 전상환 )
11. Secret ( 거미 / 거미 )
12. 옷 ( 최갑원 / 허정호 )
13. 저기 가는 사람 ( 최갑원 / 강현민 )
14. Escape ( 최갑원 / 손영재 )
이대화(dae-hwa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