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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 Type A
심현보
2004

by 김소연

2004.05.01

소위 '뜨는 곡'을 보증하는 작사가로, 또 작곡가로 익숙한 이름을 가지는 것에 성공한 심현보가 싱어송라이터의 욕심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아일랜드라는 모던 록 밴드에 몸담으며 '지중해에 가고 싶다', '잠시 후엔'등과 같은 곡을 통해 독특한 개성파 재간꾼임을 인정받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외딴 섬처럼 대중에게서 고립되고 말았다. 비록 두 앨범은 1990년대 댄스 일변도의 가요계에 버림받았더라도, 아쉽게 잊혀진 음반들 중 하나가 되어 소수의 기억에 회자되고 있다.

이후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오선지와의 씨름에만 전념해온 심현보가 7년 만에 목소리를 공개했다. 재능을 발휘했던 이전 경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남에게 곡을 써주는 것에 그쳐왔던 심현보가 혼자서 어떤 음악을 했을까 궁금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노래에 대한 욕구는 차치하고서라도, 모던 록 키드에서 유행가요 제조기로 분해 온 그가 담아두고 꺼내놓지 못한 음악은 없었을까 하는 애정 어린 기대도 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일까, 별반 특별함이 묻어나지 않는 음악들의 나열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야말로 '편하고 부담 없는 발라드'의 총집합체다. 문제는 그 와중에 줄 수 있는 '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온건파 알앤비 군단의 거의 엇비슷한 편곡은 곡들 간의 차별성을 흐리고 있고, 수많은 히트송들에서 키워 온 멜로디 감도 100% 발휘에는 못 미친 듯 보인다.

다소 작위적인 가사의 타이틀 곡 '기억을 흘리다'에서부터 '달과 뒷모습', '겁장이'는 셋잇단음표처럼 동일한 구조로 붙어있다. 'A형'을 기점으로 템포를 빨리 해 보지만 그 중 가장 자연스럽게(?) 들리는 '억지로'를 제외하고는 '꽂히는' 느낌은 덜하다. 기본적으로 실력자임을 부정해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알려진 그가 쏟아낸 히트 곡들이 아쉬워진다.

내성적인 A형 남성의 이야기를 자분자분 들려주기 위함이겠지만, 정말 심현보가 품고 있었던 음악이 수많은 가수들에게 넘겨주었던 곡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어쩔 수는 없다.

아일랜드를 통해 노출시킨 적이 있는 그의 감성 코드가 화석으로 굳어져버리는 것에 대한 걱정은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용을 뒤로 하고라도, 얼마든지 탄력적인 '요즘 음악'을, '괜찮은 가요'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심한 혈액형답게 움츠러든 느낌이다.

-수록곡-
1. Intro (눈물이 보이겠죠...)
2. 기억을 흘리다.
3. 달과 뒷보습
4. 겁장이
5. A형
6. 억지로
7. 기다립니다
8. 아직 사랑하는 나는
9. 하루
10. 우리가 정말 헤어진걸까
11. Outro (그것 만으로도...)

전곡 심현보 작사/작곡
김소연(mybranch@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