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잦은 구설수로 입지가 다소 좁아진 그지만, 머라이어 캐리가 솔로 가수로서 일군 독보적인 커리어에 의문을 던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그의 1990년대는 대중이 원했던 완벽한 가창력과 디바 이미지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누린 황금기다. 콜롬비아 레코드의 사장 토미 모톨라의 지원 아래 1991년 데뷔앨범 < Emotions >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데뷔한 지 2년도 채 안 되어 빌보드 Hot 100 넘버원을 6곡이나 자신의 이름 앞에 올려놓았다.
2집에서 기교만 중시했다는 혹평과 함께 판매량이 주춤하면서 이 신성(新星)의 질주가 금세 끝나나 싶었지만, 3집 < Music Box >에서 첫 싱글로 발매된 ‘Dreamlover’는 8주간 빌보드 1위를 지키며 앨범의 성공을 대변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Hero’ 역시 4주간 1위, 명실상부 머라이어 캐리가 대중을 홀리는 어린 디바임을 입증한 셈이다. 장르적 실험과 같은 것은 덜했을지언정, 음반은 대중의 요구를 넘치도록 만족시키며 가수를 커리어의 정점에 올렸다. 이에는 그 개인의 매력뿐 아니라 1집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머라이어 자신의 협업, 그리고 왕성한 홍보 활동이 큰 몫을 했다.
먼저 이뤄진 토미 모톨라와의 결혼이 앨범 흥행에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는 눈초리를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앨범을 구성하는 사운드를 포함해 모든 구성 요소에 앞선다고 할 머라이어 캐리의 가창은 거부하기 어려운 만듦새를 가지고 있었다. 음반은 R&B와 발라드에 기반한 감성적 접근을 극대화하면서, 저음부터 고음까지 넓은 음역대에 능통한 그의 보컬을 능란하게 활용했다.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쪼개어 부르는 화려한 기교도 곳곳에서 반복되며 귀를 자극한다.
상대적으로 빠른 템포의 ‘Dreamlover’나 클럽 댄스로 분위기를 급전환하는 ‘Now that I know’와 같은 트랙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음반의 곡들은 좁은 범위 안에서 진동한다. 거의 매 곡마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기교와 함께 감정을 쌓아올리고, 후반부에는 폭발적 고음을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가스펠적 터치가 돋보이는 ‘Anytime you need a friend’나 되풀이되는 가사에서 음의 고저만 변화시키며 보컬 능력을 드러내놓고 강조하는 ‘Without you’가 특히 진한 인상을 남기기는 하나, 이 역시 악곡보다는 보컬의 역량에 철저히 기대어 있다.
노래가 담고 있는 테마 면에서도 이 일종의 편협함이 지속된다. 결코 각 트랙은 사랑 노래라는 안전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앨범이 당시 평단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말 ‘찌르면 나오는’ 뮤직 박스인 양 어느 지점에서 재생해도 실패하기 어려운 곡으로만 엮은 영리한 모음집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이 바로 < Music Box >가 한국과 일본에서도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크게 히트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세는 토미 모톨라와의 결별 전까지 이어져, 전작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4집 < Daydream > 역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처음부터 휘트니 휴스턴의 대항마로서 짜였던 판, 그 위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초기 행보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뻔한 상업극이라 해도 잘 만들었다면 번번이 노림수에 넘어가게 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만듦새가 뛰어나니 두 손을 들 밖에. 이후 콘셉트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며 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 그의 움직임이 의미를 획득한 것도, 이러한 ‘베일을 벗지 않은’ 시절의 모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록곡-
1. Dreamlover [추천]
2. Hero
3. Anytime you need a friend [추천]
4. Music box
5. Now that I know [추천]
6. Never forget you
7. Without you [추천]
8. Just to hold you once again
9. I
10. All I’ve ever wanted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