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대중 음악계가 '리듬의 세상'인 것만은 명확해 보인다. 오선지 위에서 빚어낼 수 있는 멜로디의 경우의 수가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른 현재, 작곡가들 대부분은 비트를 쪼개고 포개는 방법으로 승부수를 띄우려 한다. 그러나 비단 멜로디의 그릇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부터 록이 청춘들의 열혈 몸짓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그 록이라는 것이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원시 아프리카 부족 때부터 그들의 몸속에 내재된 역동적 리듬을 발산해온 흑인 음악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음악 필드는 리듬, 정확히 말해 흑인 리듬이 지배하고 있는 '육체의 시대'가 된다.
사실 우리 주변만 잠깐 살펴봐도 젊은이들이 몸에 대해 갖고 있는 지대한 관심의 수준은 금세 증명된다. 얼짱이 대접 받고, 몸짱은 더 큰 환호를 받는 현태 속에서 필자와 같은 이른바 몸꽝들은 밀폐된 클럽들뿐만 아니라 홍대, 신촌, 강남 등, 젊은이들의 열린 공간 어디에서도 주목 한번 받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춤과는 태어날 때부터 인연이 없었던 몸이니 애당초 그냥 죽어지내는 것이 상책일 뿐이다.
이러한 몸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청춘들의 대세를 형성하면서 본격적으로 부각된 작법이 바로 원-코드 프로그레션(one-chord progression)이다. 멜로디를 거세하고 오로지 코드 한 개만을 사용해 음악을 주조해내는 이 방식은 현재 흑인 음악의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면서 차트를 지배하고 대중들의 청(廳)감수성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Yeah!'로 차트 정상에 우뚝 선 어셔(Usher)를 필두로 시아라(Ciara) 등의 혜성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크렁크 앤 비(Crunk & B)라는 장르로 고착화된 이 원-코드 진행은 지금의 음악계가 얼마나 몸의 움직임과 동선에 민감한지를 명증해주는 좌표라고 할 만하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역시 원-코드 프로그레션을 간판으로 내걸어 현재 성공가도를 내달리고 있는 뮤지션이다. 흡사 어셔의 'Yeah!'를 듣는 듯한 느낌의 첫 싱글 'Run it!'으로 빌보드 차트의 꼭짓점을 밟으며 단숨에 대중의 가시권을 획득해낸 이 아티스트의 리듬을 타는 능력은 과연 소문대로 범상치 않은 레벨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빰빰'거리는 신시사이저의 반복을 통해 크렁크 앤 비적인 뉘앙스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보컬 멜로디의 굴곡을 좀 더 살려 청감에의 흡착력을 최대치로 높인 점이 돋보인다. 코러스 부분에서 코드 진행을 살짝 바꿔 원-코드 넘버라 부르기에는 다소 어렵지만 통시적 관점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아 최신 조류를 대변하고 있다 결론지어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곡이다. 명 프로듀서 스콧 스토치(Scott Storch)가 사운드의 키를 잡아 곡의 전체적인 세련미 완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Run it!'을 통해 이처럼 이름 석자를 널리 알렸다지만, 곡을 제외한 나머지 트랙들은 원-코드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R&B 넘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크리스 브라운의 강점이 발현된다. 즉, 리드미컬한 곡들 뿐 아니라 가창력이 중시되는 R&B 보컬 곡들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뽐내며 스타일의 양가적 소구를 훌륭히 일궈냈다는 점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Yo (Excuse me Miss)'를 포함해 'Young love', 'Ya man ain't me', 'Winner' 등의 곡들이 이를 대번에 증명해주며 'Run it!'과 유사한 지향에 좀 더 선율의 양감을 부각해 스펙트럼을 확장한 'Gimme that'도 좋은 예시로서 손색이 없는 굿 싱글이다.
이 외에 노아(Noah)를 피처링한 곡으로 자기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는 'What's my name', 어번(Urban)의 향취를 한껏 풍기는 'Is this love?', 찰진 리듬의 분할이 그야말로 일품인 'Just fine', 바우 와우(Bow Wow)와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가 솜씨를 발휘해 좀 더 강하게 클럽 분위기를 발산하는 'Run it!(Remix)' 등의 곡들을 통해 신인답지 않게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크리스 브라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Run it!'으로 2005년의 헤로인(heroine) 머라이어 캐리와 자웅을 겨루며 빌보드 차트를 날아다닌 크리스 브라운의 이번 신보는 현대의 흑인 대중음악이 신서사이저나 클랩 사운드를 이용한 자극적인 비트 생산에 중력을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과정적 지표로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르적 분석과 고찰을 한켠에 물리고서라도 주의를 기울여 들어봐야 할 만큼 이 흑인 젊은이가 들려주는 곡 하나하나는 일반의 재기를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2위까지 진출하며 두 달 안에 100만장을 상회하는 높은 판매고를 올린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단지 최신 유행에 민감한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래 실력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달콤한 과실은 결코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 브라운은 흑인 음악의 현재상(象)을 대변해주는 전도유망한 뉴 아이콘이자 앞으로 그것의 미래를 조감하는데 꼭 필요한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뮤지션으로 기록될 것이다.
-수록곡-
1. Intro
2. Run It! (Feat. Juelz Santana)
3. Yo (Excuse Me Miss)
4. Young Love
5. Gimme That
6. Ya Man Ain'T Me
7. Winner
8. Ain'T No Way (You Won'T Love Me)
9. What'S My Name (Feat. Noah)
10. Is This Love?
11. Poppin'
12. Just Fine
13. Say Goodbye
14. Run It! Remix (Feat. Bow Wow + Jermaine Dupri)
15. So Glad
16. Thank 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