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면에 두각을 나타냈던 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었다고 익히 알고 있다.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도 불과 열여섯의 나이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첫 싱글 'Run it'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등극한 것은 차세대 R&B 히어로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썩 좋지 못했던 평단의 반응은 일단 보류해도 좋았다. 아니라 다를까 클럽에서 불붙은 호응도에 힘입어 차트 1위곡이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허나 영웅에게도 시련은 있는 법. 다만 위기의 모양새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것이 문제다. 맞다. 당시 여자 친구, 리아나(Rihanna)와 벌어진 야밤의 활극은 R&B 신성인 그를 하룻밤에 인간쓰레기로 추락시켰다. 재기가 가능하겠냐는 조소 섞인 우려 속에서 어쨌든 새 앨범 < Graffiti >는 나왔다. 시작부터 반은 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나. 인과응보다.
< Graffiti >를 내놓으면서 크리스 브라운 본인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프린스(Princ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에 필적할 만한 음악적 시도를 꾀했다고 밝혔다. 전설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대목에서 훈훈함을 느낄 새도 잠시, 1번 트랙 'I can transform ya'는 혹시나 했던 기대를 냉정하게 저버린다. 영화 < 트랜스포머 >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보코더 사운드로 휘감은 힙합 비트는 특화될 것도 새로울 것도 전혀 없다.
틈새를 잘 들여다보면 그의 언급이 무색하지는 않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 댄스 비트의 향취가 새어나오는 'I.Y.A'가 그나마 눈길을 끄는 정도이며 그가 인용한 전설들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이다.
흥미로운 점은 리아나와의 재결합을 연상시키는 곡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들이야 사랑 노래의 주된 테마이긴 하다. 그러나 'Crawl'과 'So cold'과 같은 발라드 트랙에서 크리스 브라운은 자신의 용서를 누군가에게 두 손이 다 닳도록 빌고 있다. 이 같은 사과 공세로 이미 떠나간 버스가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무뢰한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순화시키기에는 효율적이다.
그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가창력도 그렇거니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춤 실력 또한 발군이다. 어떻게 보면 젊은 날의 치기어린 실수로 한 촉망받던 아티스트가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 Graffiti >는 이 같은 변호가 무색할 정도로 무색무취하다. 더욱이 상처로 얼룩진 극한의 상황을 과감하게 표현한 리아나의 < Rated R >과 비교했을 때에 그 초라함은 배가된다.
-수록곡-
1. I can transform ya (Feat. Lil Wayne & Swizz Beatz)
2. Sing like me
3. Crawl
4. So cold
5. What I do (Feat. Plies)
6. Famous girl [추천]
7. Take my time (Feat. Tank) [추천]
8. I.Y.A.
9. Pass out (Feat. Eva Simmons)
10. Wait (Feat. Trey Songz & Game)
11. Lucky me
12. Fallin' down
13. I'll go
14. Girlfriend
15. Gotta be ur man
16. For ur love
17. I need this
18. I love you
19. Brown skin girl (feat. Sean Paul)
20. Chase our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