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사운드가 작금의 넘버원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확실한 대세임은 물론이요, 이만하면 헤게모니를 장악한 수준이다. 빌보드 차트만 봐도 알 수 있다. 'R&B/Hip-Hop songs'라고 명명해놓은 이 순위표에서 이제는 진짜(?) R&B가 무엇인지, 혹은 Hip-hop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다. 휘황찬란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자라면 반대로 랩을 하는 것은 후자던가.

지난 54회 그래미 시상식도 이러한 흐름에 한 몫 거들었다. 그해 가장 뛰어난 R&B 앨범을 선정하는데 있어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전작 < F.A.M.E >의 손을 들어준 것이 바로 대세를 반영했다는 증거로, 덥 스텝(Dubstep) 튠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앨범 앞에서 되려 '고전적인' R&B 기준에 가까웠던 엘 드바지(El DeBarge)나 알 켈리(R. Kelly)의 처지만 머쓱하게 되었다. 문제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시대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댄스 스테이지 위에서 그래미 상이라는 날개까지 달았으니 크리스 브라운에게 클럽 사운드를 재탕하는 것만큼 완벽하고 또 쉬운 일이 어디 있었을까. 혁신이라는 명목 하에 변화의 위기를 감내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모험처럼 보였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베이스음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비트를 잘게 쪼갠 덥 스텝 식 구성은 여전하고 현란한 사운드가 온 트랙을 지배하는 형세 또한 그대로다. 바뀐 점이 있다면 기존의 소리에 각양각색의 화려한 효과를 입히며 한층 더 고차원적인 질감을 주조(하려)했다는 것인데 이 또한 듣기 불편할 정도로 작위적이다. 덕분에 'Sweet love'는 어디에다가도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산만한 곡이 되었으며 기습적으로 레이저 소리를 쏘아 올리는 'Trumpet lights (Feat. Sabrina Antoinette)'는 어느 타이밍에 내 귀로 광선이 날아드는지 긴장하고 들어야 할 트랙이 되었다.

물론 감각적인 재능이 빛을 발하는 트랙도 있다. 첫 싱글로 공개되었던 'Turn up the music'은 탄탄한 리듬에 사운드를 잘 배합해놓은 트렌디한 작품이며 업 템포의 곡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완급을 조절하는 'Strip (Feat. Kevin McCall)'은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2012'는 미니멀한 접근과 크리스 브라운 특유의 보컬이 수준급인 발라드 곡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는 멜로디 라인이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트랙 전체에 어질러진 클럽 사운드에 가려 앨범의 소소한 매력 포인트는 쉬이 제 값을 해내지 못 한다. 업 템포 댄스곡들의 대체재로서 소구력을 발휘하던 발라드 라인마저 각종 사운드에 휩싸여 다소 갑갑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조미료 식의 효과음을 더 넣기보다는 차라리 전작의 'All back'처럼 담백하게 접근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같이 따른다.

결국 < Fortune >은 클리셰의 수준으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 F.A.M.E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모습은 진부한 자기복제에 가까운 형상이기 때문이다. '클럽에서도 틀 수 있는 R&B를 만들겠다'던 초기의 목표는 얼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앨범이 가지는 의의는 단지 그뿐, 클럽 튠으로 가득 채운 지루한 트랙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선함은 아무것도 없다. 매번 달라져야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료함으로 끝나버릴 단발성의 기획은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수록곡-

2. Bassline

3. Till I die (Feat. Big Sean and Wiz Khalifa)

4. Mirage (Feat. Nas)

5. Don't judge me

7. Biggest fan

8. Sweet love

10. Stuck on stupid

11. 4 years old

12. Party hard/Cadillac (Interlude) (Feat. Sevyn)

13. Don't wake me up

14. Trumpet Lights (Feat. Sabrina Antoi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