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심리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 2009년 주먹을 잘못 쓴 죄로 회생불가의 지경으로 내모는가 하더니 불과 2년이 지나자 빌보드 앨범 차트 순위 1위로 복권시켰다. 우리 역시 자조적으로 냄비근성을 운운하지만, 관대함을 따지자면 이쪽도 만만찮은 셈이다. 게다가 앨범 발표 직후 출연한 토크쇼에서 리한나(Rihanna)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녹화 후 흥분을 못 이겨 세트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말이다.
한편의 부조리극을 연상토록 만드는 현상의 원인이 궁금하다. 그렇다고 앨범이 진보했다 보기도 힘들다. 2000년대 남성 컨템퍼러리 알앤비 가수가 걸어온 행적을 답습하면서, 여기에 더해 자기복제에 가까운 모습이 앨범 전반에 만연하다. 베이스음을 과도하게 증폭시키고, 비트를 잘게 쪼개면서 발작적인 춤사위를 유도하는 클럽 튠이 기본 토대임을 초심자도 짐작할 수 있다. 막간에 배치된 알 켈리(R. Kelly)식 발라드 트랙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궤적이 일관되니(무려 18곡이나!)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국에는 휘황찬란한 싱글용 트랙들이 클럽돌이의 굳건한 이미지를 건재하게 지속시킨다. 'Look at me now'는 아랍 음악 풍의 신시사이저 효과로 음란한 감각을 촉진하는데 열중하고, 'Yeah 3x'는 대륙을 가로지르며 복고풍의 유로댄스 버전으로 건강한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힘쓰는 것 같다. 디럭스 에디션 버전으로 추가된 후미 트랙들은 사실상 주말 야밤을 위해 탄생된 곡이라 봐도 무방하다.
빌보드 앨범 차트가 근래 들어 댄스 앨범 차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기본전제로 둔다면 크리스 브라운의 명예회복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트렌드가 제일조건이었던 셈이다. 다만 얼굴을 비췄다 하면 욕하고 보는 안티세력에 대한 반작용이 동정표를 줬을 수도 있고, 흑인 남성들의 마초적 성향이 은근히 작용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크리스 브라운 한 사람의 인생을 보자면 올해 역시 절반의 성공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앨범 명 < F.A.M.E >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Fans Are My Everything'이 첫 번째 의미라면 이번 앨범의 성공으로 일정 부분 달성했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는 'Forgiving All My Enemies'이다.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 객기를 참지 못하고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 후자를 실현하기 위한 길은 아직도 요연해 보인다.
-수록곡-
1. Deuces (feat. Tyga & Kevin McCall)
2. Up to you
3. No bs
4. Look at me now (feat. Lil Wayne & Busta Rhymes)
5. She ain't you
6. Say it with me
7. Yeah 3X
8. Next to you (feat. Justin Bieber) [추천]
9. All back
10. Wet the bed (feat. Ludacris)
11. Oh my love
12. Should've kissed you
13. Beautiful people (feat. Benny Benassi) [추천]
14. Bomb (feat. Wiz Khalifa)
15. Love the girls (feat.Game)
16. Paper, scissors, rock (feat. Timbaland & Big Sean)
17. Beg for it
18. Champion (Chipmunk f/Chris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