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지의 신보는 미국 범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제이는 댄젤 워싱턴의 범죄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를 보고 영감을 받아 새 앨범의 컨셉트를 영화와 동일하게 가져갔다. 영화의 내용은 베트남 전쟁 당시 헤로인 딜러로 악명 높던 프랭크 루카스(Frank Lucas)의 일대기를 그린다. 당시 뉴욕 할렘의 암흑가를 누비던 루카스 역은 바로 댄젤 워싱턴이 맡았다.
제이가 이 영화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래도 과거 마약상으로 일했던 자신의 삶과 유사했던 부분이 적잖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브룩클린 뒷골목에서 마약 거래를 하던 제이가 랩으로 결국 힙합스타 자리에 오른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제이는 언론을 통해 "영화는 내게 큰 충격을 줬다. 그건 내 영화나 마찬가지"라고 고백했다. 이 얼마나 리얼리티 강한 스토리인가. 최근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영화 개봉에 발맞춰 제이와 신보 소식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바 있다.
음반이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점은 영화 속 댄젤 워싱턴의 대사 일부를 트랙으로 구성한 대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 나아가 지난 9월 20일 먼저 공개된 첫 싱글 'Blue magic'의 제목은 프랭크 루카스가 팔았던 헤로인의 종류를 암시한다. 이밖에 두 번째 싱글 'Roc boys (And the winner Is)...'는 내용 면에서 첫 싱글과 연장선상에 놓이며, 마약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루카스의 궤적은 트랙 전편에 걸쳐 일관적으로 표출된다.
< The Black Album >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힌 제이는 지난해 < Kingdom Come >과 함께 다시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다. 이 앨범은 제이의 창작이 끝나지 않았음을 과시했지만 힙합 영웅의 재기를 고대하던 이들의 욕망마저 충족시키진 못했다. 따라서 제이는 신작을 통해 아직 필드 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으며 스토리텔러의 재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호소한다.
제이의 신보는 이글스를 밀어내고 발매 첫 주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11월 24일자 핫 샷 데뷔한 이 음반은 제이 지의 여덟 번째 넘버원 정규앨범이 됐다. 과거 어두운 미국 역사를 음반에 담았듯이 현역 최고의 힙합스타가 화제의 앨범을 내놓으니깐 미국인들의 지갑은 무척 쉽게 열린 모양이다. 어쨌거나 얼마 전 제이는 자신을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에 비유하며 가수로서 전성기가 이젠 한계점에 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이가 끝났다' 혹은 '가수로서 내리막길에 올랐다'는 말은 아직 믿고 싶지 않다.
*프랭크 루카스를 직접 만나고 싶다면 12월 27일 개봉되는 댄젤 워싱턴의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를 관람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