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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print 3
제이 지(Jay-Z)
2009

by 김獨

2009.09.01

따분하지만 영리한 비즈니스

<롤링스톤> 매거진이 선정한 '500장의 명반' 리스트에서도 거론되는 '블루프린트'는 힙합계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정평이 나 있다. "제이-지의 커리어는 블루프린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 작품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둔 이 성공한 엔터테이너는 당시 바비 블랜드와 데이비드 러핀 같은 소울 명인들의 잠자던 보컬을 끄집어냈고 앨범은 곧 '힙합의 클래식'으로 추앙 받았다. 21세기 힙합 재간꾼인 카니예 웨스트의 메이저 필드 입성도 블루프린트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지난 2002년 발매된 2편을 끝으로 숨죽이고 있던 블루프린트가 7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끝날 것 같던 블루프린트가 환생한 이유는 뭘까. 신작은 그 3부작이자 종결편이다.

최근 제이는 "이번 세 번째 작품을 녹음한 후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블루프린트 시리즈를 부활시킨 배경은 이처럼 3편을 향한 그의 특별한 애착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영리한 비즈니스다. 우선은 앨범 발매 이전 '오토튠'이 화제선상에 올랐다. 논쟁을 부로 바꿀 줄 아는 제이의 야망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제이는 음성변조로 대변되는 오토튠을 밥 먹듯 한 가수들을 싸잡아 공격하는 등 신보 발매 시점에서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제이의 '안티-오토튠' 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불협화음 넘버 'D.O.A.'는 그래서 첫 싱글로 발매되는 등 수록곡 가운데 가장 먼저 매스컴의 이목을 끌었다. 이 곡이 보여주는 의도적인 리듬 파괴는 오토튠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다.

앨범 커버는 기존 2장과 사뭇 다르다. 숀 카터의 인물 이미지를 부각시킨 이전 작품들과 달리 3편은 '3'을 상징하는 중간 붉은색 로고 뒤로 온갖 악기와 음향장비를 쓰레기 더미처럼 쌓아 올렸다. 궁극적인 의미는 제작자가 아닌 이상 파악하긴 힘들지만 재킷만큼 내용물은 인상적이진 않다.

무엇보다 단어 퍼즐에 능한 제이의 재기발랄한 라임은 여전해도 귀를 잡아채는 화끈한 훅은 부족하다. 특히 전설의 마약 딜러였던 프랭크 루카스의 일대기를 다룬 전작 <아메리칸 갱스터>보다 심오한 가사나 스릴 넘치는 사운드트랙은 기대하긴 힘들다.

블루프린트를 기억하는 이들은 분명 이 시리즈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제이는 랩을 하고 노래는 샘플링이나 게스트에게 넘긴다. 뚜렷한 역할 분담이다. 강한 비트 트랙이 흐르고 나면, 다음엔 무드 있는 리듬앤블루스가 멜로디 화음을 만든다.

데프 잼 수장 명함을 반납하고 새로 설립한 레이블 록 내이션(Roc Nation)에서 발매된 3편도 마찬가지다. 여기 15곡이 웅변한다. 제이는 조력자인 웨스트를 비롯한 패럴 윌리엄스, 스위츠 비츠, 노 아이디(No. I.D.) 등 절친한 동료들과 함께 MTV가 선호하는 레코딩에 포커스를 맞춘다. 앨리샤 키스와 리아나, 드레이크, 키드 커디 및 Mr. 허드슨 등 초청 가수만 바뀌었을 뿐 음악감독 면면은 유사하다. 따라서 패턴의 변화는 단지 미비한 수준에 머문다.

때문에 3부작은 어쩌면 코어 팬들에게 지루한 힙합 샘플로 남을지도 모른다. 7년 만에 재회한 제이와 블루프린트의 궁합은 그럼에도 주류 미디어가 갈채를 보낼 만한 몇몇 트랙을 통해 메이저 히트상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톱스타 리아나와 웨스트가 게스트로 초빙, 빌보드 톱10에 진입한 'Run this town'보다는 브룩크린에서 자란 숀 카터가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Empire state of mind'가 앨범의 핵심 싱글이다. 이미 MTV 시상식에서 화끈한 퍼포먼스를 가진 이 곡은 앨리샤 키스가 피아노와 보컬을 맡아주면서 수록곡 중 가장 대중 친화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올해의 싱글' 후보로도 유효하다.

앨범의 팡파르 트랙은 웨스트의 것이다. 시리즈 가운데 자칫 알맹이 없는 블루프린트가 될 수도 있었으나 웨스트가 7곡의 콘텐츠를 매만지면서 리듬 파트는 다소 하모니가 강조됐고 편곡도 유연해졌다. 현재 숀 카터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고 노래하는 'Thank you', 힙합 신성 키드 커디가 참여한 긴장감 넘치는 핫 트랙 'Already home' 등이 대표적인 예다.

블루프린트 3편은 발매 첫 주 대략 47만여 명이 음반을 구매해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제이에게 11번째 넘버원 앨범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다줬으며 덩달아 엘비스가 갖고 있던 전설적인 대기록(10회)을 갈아치웠다.

우리시대 '힙합의 아이콘'다운 진면목이 이 대목에서 강하게 어필된다. 강력한 킬러 싱글 부재로 얼룩진 대미를 장식할 뻔 했던 블루프린트 시리즈의 엔딩 쇼는 그 하나로 거대한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수록곡-
1. What we talkin' about
2. Thank you [추천]
3. D.O.A. (Death of Auto-Tune)
4. Run this town
5. Empire state of mind [추천]
6. Real as it gets
7. On to the next one
8. Off that
9. A star is born
10. Venus vs. Mars
11. Already home [추천]
12. Hate
13. Reminder
14. So ambitious
15. Young forever
김獨(quincyjon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