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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To Where I Am
박정현
2007

by 조이슬

2007.12.01

보컬과 거대한 규모가 만나 감성의 극대화를 이룬 4집 '꿈에', 그리고 '달'을 거쳐 '위태로운 이야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분명 조금 달랐다. 그와 같은 알앤비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화요비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디바들이 모두 '톤다운'에 들어갔던 것. 누구도 넘보질 못할 가창력을 주 무기로 삼은 그들이 '톤다운'에 들어갔다는 것은 '노래'가 아닌 음악에 귀기울여달라는 일종의 호소 같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신작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얘기한다. "이제는 음악에 집중해주세요!"

'박정현'에게 있어 팬들의 초점은 언제나 그 가창력이었다. 끊어질 듯 얇은 음성이지만 가공할만한 파워를 지니고 있고, 한결같이 높은 음역에서조차 똑같은 톤을 유지하는 것. 알앤비 보컬 가수들에게 수많은 수정이 가해졌을지라도 그녀에게서만큼은 변함없이 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앨범에 한 두곡 정도의 자작곡만을 꾸준히 실은 것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이번 신작에서 12곡의 수록곡 중 4곡의 작곡, 프로듀서 황성제와 6곡을 공동 작곡하면서 그의 이런 의지에 더욱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앨범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음악만으로 평가하기에는 '꿈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파워 가창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애드리브와 마치 가스펠을 듣는 듯한 코러스, 간드러지는 떨림 등의 가창의 요소가 두루 탄탄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당백의 파워를 가졌던 이 곡의 싱글 흡인력까지는 닮지 못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포인트다.

다시 말해, 이 앨범은 싱글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타이틀 곡 '눈물빛 글씨'를 보면 정확하다. 어느 때보다 '음악'에 귀 기울여지기를 바라지만 훅 부분에서는 확실히 선율의 힘이 조금 떨어진다. 모처럼 타이틀곡에 욕심을 내보지만 화성의 진부함 내지는 패턴의 평범함이 걸린다. 그럼에도 긍정표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너무도 흔한 얘기겠지만) 뮤지션으로서 확장해가는 보컬리스트를 보는 일은 언제나 너무 흐뭇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강력한 '한 방'의 싱글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앨범 곳곳에 번뜩이는 재치들이 잔뜩 숨겨져 있다. 그 중 건반과 스트링의 질감이 좋은 모던 록 '헤어짐은 못됐어요'는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풍의 명쾌함이 돋보이고, 그녀 작사, 작곡의 'Hey Yeah'도 마찬가지. 조금씩 시도해왔던 모던 록에도 이런 탄력적인 가창이 어울릴 수 있음을 넌지시 건넨다. 'Smile'에서는 의외의 강성 사운드도 보여준다. 거친 톤 위에 가벼우면서도 강하고, 청아하면서도 고딕적인 음색이 매력적이다.

어느 때보다도 음악을 들어주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성급히 가창을 쉽게 버리진 않았다. 자신에게 어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를 롤 모델로 삼은 보컬 지망생들은 '눈물빛 글씨'를 부르면서 여전히 동경어린 찬사를 보낼 것이고, 기존의 팬들은 그의 음악에 대한 섬세한 고민에 귀 기울일 것이다. 이것이 싱어 송 라이터로의 전진을 위해 그를 온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 길목에서의 후한 여유를 듣는 이들에게도 권하는 앨범이다. 신보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수록곡-
1. Funny star (작사: 심현보 / 작곡: 박정현)
2. 눈물빛 글씨 (강은경 / 박정현, 황성제)
3. 달아요 (윤사라 / 박정현, 황성제)
4. 마음이 먼저 (윤사라 / 박정현, 황성제)
5. The other side (박정현 / 박정현, 황성제)
6. Hey yeah (박정현)
7. 믿어요 (강은경 / 박정현)
8. 헤어짐은 못됐어요 (심현보 / 강화성)
9. 우두커니 (강은경 / 박정현, 황성제)
10. 순간 (박정현 / 김찬진)
11. Smile (박정현 / 박정현, 황성제)
12. Everyday prayer (박정현)

Produced by 황성제, 박정현
조이슬(esbo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