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인터뷰

싸이(Psy)

by 임진모

2006.10.01

“자연스러운 게 오래가고 심플한 게 강력합니다.”

네 번째 앨범이 사집이 아닌 < 싸집 >인 유별난 싸이의 전성기는 그답게 유별나다. 삼국(전파매체, 광고모델, 무대) 통일의 기염을 토하는 것은 모든 스타들의 공통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활동공간이 존재한다. 대학축제. 올해 가을 대학축제에서 싸이는 피날레 연예인섭외의 영순위로 특대(特待)를 받고 있다. 그 자신도 “대학축제에서 결실을 맺는 느낌”이라고 했다.

방송도 방송이지만 축제를 비롯한 공연무대에서 그에게 쏟아지는 환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하다. 게다가 그는 이 뜨거운 인기를 '밉지 않음'이라는 어정쩡한 이미지를 가지고 이룩했다. 댄스가수에게 인색한 록 팬들도 '댄스가수'임을 자처하는 싸이한테만은 팔짱을 풀고 박수를 친다.

'밉지 않은 연예인'이라는, '호감과 비호감의 사이'라는 애매한 라인으로 그의 위치가 규정되곤 하지만 그것은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인(어쩌면 이상적인) 팬 베이스의 소유자라는 역설의 수사(修辭)이자 실화다. 거기에는 예쁘지 않다는 공정한 시각 아닌 '밉지 않아서 더 예쁘다'는 우호적 시선이 숨어 있다.

전성기 스타의 기상은 실로 놀랍다. <싸집>에서 발표한 곡 '연예인'이 올 중반기 최고 히트라고 할 만큼 노래도 높이 뜬데다, 홈쇼핑 국제전화 주유소 등 서너 CF의 모델임이 증거 하듯 사람도 엄청나게 떴다. 가수와 노래가 동시에 비상하는 사례는 요즘은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10월14일 결혼식이라는 겹경사가 기다린다. 그의 말에 따르면 '톱을 치고 장가가는 것'이다. 전성기에 그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가 '너무 바빠 힘들다'고 하면 그것은 즐거운 비명이고 '역시 연예인의 삶은 고달프다'고 하면 그것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서러운 절정의 화염이다. 그를 구동시켜준 엽기라는 휘발성이 강한 화제와 대마초가수라는 불리를 딛고 승승장구하는 그의 스타덤은 분명 밉지 않다, 아니 부럽다. 심지어 '성공모델'이 되기도 한다.

9월23일 토요일 MBC <쇼! 음악중심>의 리허설을 앞두고 방송국의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분주한 대학축제와 방송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자세로 대화에 임했다. 이미 TV의 토크쇼나 무대 제스처로 충분히 알려진 재미 모드를 여지없이 드러냈지만 그 웃음 바로 옆에는 메시지가 붙어있었다. 그는 “관객은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사는 이유를 주는 분들이죠. 그래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모든 존재의 이유를 팬에게 돌렸다.

멀리서 봐도 스케줄이 폭발한 것 같습니다.
방송은 거의 소화했고 지금은 대학 축제로 바빠요. 저의 무대 비중 순서는 첫 번째가 콘서트, 다음이 축제 그 다음이 방송이죠. 축제가 방송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앨범을 지금까지 겨울 아니면 여름에 내서 대학의 봄 축제나 가을 축제에서 결실을 맺는 느낌입니다. 축제에서 'We are the one'이나 '연예인'을 부르면 이전의 고생에 대한 보답 같아서 더 가슴 벅찹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신부 유혜연씨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저랑 정반대의 사람이에요. 동적인 저와 달리 정적(靜的)이고, 바깥형인 저와 반대의 내성적인 성격이죠. 모든 인적사항이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짖을 때 안 듣든지, 피하든지 상황을 잘 넘겨주는 사람이죠. 방위산업체 근무할 때 교제를 시작했는데, 싸이 아닌 박재상으로 만나서 아무래도 절 덜 연예인으로 이해합니다.

TV 출연은 물론 신보홍보를 위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잦지 않은가요. 이것은 어떤 판단에 기초한 싸이식 마케팅인가요.
보통과 일반, 그러니까 광범위한 대중을 보니까 (TV) 노출빈도와 인기는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1년마다 콘서트를 하잖아요. 관객이 늘었는데도 '왜 이렇게 TV에 안 나와요?'라는 말을 하세요. 사실 콘서트를 하다보면 TV는 좀 등한시하게 돼요. 20대와 30대가 보는 음악프로도 없구요. 10대들이 제 타깃은 아니라고 봐요. 그래도 불은 지펴야 하고. 어디서 해야죠? 옷만 바꿔 입고 똑같은 무대와 세트에서 출연하는 게 한심하긴 하고 제가 방송에 나오지 않은 3년간 시스템도 바뀌긴 했지만 '팬들이 왜 날 처음 좋아했는가'를 잊지 말자 주의에요. 근엄한 싸이는 보기 싫어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장가까지 가면. 너무 힘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 가벼워지자는 생각을 했죠.

어느 무대에서나 어떤 프로에서나 자신감이 넘쳐 보입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겁니까.
1집 때는 정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때 막 해볼 수 있었던 것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 되면 그만두지 뭐'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까불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롱런하는 것은 '배드 보이(Bad boy)' 캐릭터라고 봅니다. (웃으며) 관객들이 너그러운 거죠. 너무 건전하게, 건강하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부담이 덜하죠. 자신감은 그래서일 거예요.

싸이 음악의 핵은 가사입니다. 그것도 강하고 스트레이트한 어조죠.
전 대중음악의 가사가 표백화된 상태라고 봤어요. 전부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죠. 그러나 이면은 '퍼킹'인 경우가 허다해요. 어둠을 그려내서 공감을 사는 영화와 달리 가요는 '다크니스'가 없습니다. 대개가 좋은 게 좋은 것,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이죠. 전 작사하면서 사랑이란 단어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사랑이란 말을 동원하면 가사 쓰기가 쉬어져요. 가사는 공감을 불러야 하고 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가사는 메시지가 있는 것 아닌가요. 사랑이란 말을 안 쓰면서 디테일한 노랫말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벌써 네 번째 앨범입니다. 음반을 만들 때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면.
가수들을 보면 '체인지'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해야 산다는 거죠. 전 앨범과 앨범 사이에 '체인지'가 아니라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쿨과 코요태가 롱런을 한 것도 바로 이것 아닐까요. '대중들이 나한테 준 것'을 잊지 않아야죠. 그것은 신나는 리듬과 범상치 않은 솔직한 가사죠. 지겹다고 바꾸면 안 됩니다. 제 음악 신조가 '자연스러운 게 오래 가고, 심플한 게 강력하다!' 이거예요. 하지만 뭐, 거창한 사고로 임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마음이 동하는 것을 할 따름입니다. 이런저런 생각하지는 않아요.

2001년 데뷔해서 '새'와 '끝'으로 떠오르고 나서 '신고식'과 '얼씨구'를 내세운 2집은 실패했습니다. 왜 그랬다고 봅니까.
'새'는 심의와의 지능 전에서의 승리, 외줄타기의 걸작이었죠. 도발의 단발효과를 만끽했습니다. 2집에 와보니 더 이상의 도발은 어렵다고 판단했고 심의위원들도 경계하고 그러면서 섹슈얼한 이미지 쪽으로 갇혀버렸어요. 창작의 목적은 도발인데 마인드 부재로 갈피를 못 잡고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어요. 작사 작곡 모두가 문제였습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호되게 겪은 거죠.

2집의 경험 때문에도 3집 앨범은 고민이 컸을 듯합니다.
정체성 문제를 떠나서 아닌 게 아니라 당시 대마초사건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욕설로 도배된 앨범을 만들어놨어요. 이 데모를 쿨의 (이)재훈이 형에게 들려줬죠. 재훈이 형이 음악을 많이 듣거든요. 그랬더니 한마디로 망하겠다는 거였어요.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쿨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하는지 아느냐?'는 겁니다. 한방 맞은 듯 했어요. 여기서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대중이 저한테 준 것, 제게 바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데모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을 만들어야 했죠. '챔피언'이 그래서 나오게 됐습니다.

'챔피언'은 월드컵 이후에 나와 호쾌한 반전을 마련해주었지요.
2002년 월드컵 때 시청에 가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어요. 대마초사건으로 활동규제에 묶인 저로서는 엉겁결의 컴백 무대가 되는 운을 누렸구요. 갔다 와서 비트를 찍었고 그러고 나서 우연히 TV에서 외화 < 비벌리 힐스 >를 보게 됐죠. 미국 테마(해롤드 폴터마이어의 'Exel F')를 쓰는 것에 잠시 고민했지만 바로 샘플링했습니다.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챔피언'의 성공은 건전한 도발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이 곡으로 숨통을 튼 뒤 섹슈얼은 막가게 됐죠.

싸이가 시대의 아이콘 격으로 부상한 것은 재미와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함에 있다. 일례로 홈페이지에 그는 '좋아하는 것, 권장하고 싶은 것'이라는 대목에 이렇게 썼다. '주색잡기, 흡연, 과음, 과속, 과목... 육체건강에 나쁠수록 정신건강엔 좋다. 난 후자를 택했다. 청소년은 참고하지 말도록...' 하지만 그는 쾌락 스타일의 언행을 소비에 그치지 않고 생산적으로 바꾼다.

그것을 싸이식 주의(主義)와 마케팅으로 연결하면서 메시지를 부여한다. 그래서 한때 네티즌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지적인 이미지의 연예인'으로 꼽혔는지도 모른다. 결코 만만치가 않다. 곡을 하나 홍보하더라도 그만의 사고가 투입된다. '새' 다음에 '끝'으로 가고 '환희' 다음에 '아버지'로 가는 것도 '타이틀은 강성, 다음은 감성'으로 가는 그만의 통찰력이다. 인터뷰에서도 배석한 사람들이 놀랄 만큼 지적인 언어플레이를 구사했다.

싸이의 강점은 뭐라고 봅니까.
배드 보이에 댄스가수라는 점 아닐까요. 운신의 폭이 넓잖아요.

활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을 보면 철저히 소비자중심입니다. 대중가수, 댄스가수라는 정체성을 조금은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 아닌가요.
가끔 뮤지션으로부터 '나의 만족을 위해 음악을 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왜 음반을 냅니까? 팔기 위해서 소비자기호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장사죠. 음악 하는 게 벼슬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댄스가수라고 외치죠. 뮤지션의 자기만족은 녹음실로 가면서 끝나요. 이때부터는 프로덕트죠. 집에서 데모를 뜰 때는 자기만족이지만 녹음, 믹싱, 마스터링 작업을 하게 되면 수도 없이 곡을 듣게 됩니다. 너무 질리고 만족은 사라지죠. 자연히 사업으로 전환됩니다.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만 지난 7월말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출연해서 '제가 펜타포트에 출연한다니까 일개 댄스가수가 록 무대에 나온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전 여기 설 자격이 있습니다. 실은 제 장래 희망이 로커거든요.'라는 발언을 해서 갈채를 받았죠. 사실입니까.
나중에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어요. 오래 생각하고 내뱉은 것인데 비난한 분들은 현장에 없었던 네티즌들 같습니다. 서른에 장래희망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스레고 위트죠. 농이라고 할 것을 준엄하게 꾸짖는 것에서 폐쇄성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싸이가 밉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꽤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싸이가 예쁘지는 않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팔방미인은 일찍 죽는다고 하는 게 우리죠. 제가 건방지고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데다, 나름대로 잘 되고 있는데 외향은 지극히 '향토적'이니까 대중들이 절 부담스럽지 않게 보는 것 같아요. 밉지 않은 거죠.

아까 '심플한 것이 강력하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서 심플이란 대중노선이나 노랫말 등을 가리키는 거죠?
그것도 그렇지만 콘서트 후에 절감한 사실이에요. 전 비록 미디음악을 하지만 콘서트에서는 밴드 사운드를 구사하죠. 콘서트 초기에 사운드를 미디 6, 날 것 4의 비율로 했더니 (관객 반응이) 터지지가 않는 거예요. 2004년에는 서울음향의 최기선 엔지니어와 상의해서 미디 다 빼고 전부 날 것으로 가봤습니다. 그랬더니 터지는 겁니다. 심플해지니까 된 셈이죠. 콘서트 어레인지(편곡)는 '모노'가 최고더라구요.

이것은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싸이의 코드라고 할 '반항'은 기업인을 아버지로 두고 보스톤과 버클리음대에서 수학했을 만큼 유복한 집안 출신이라는 신분과는 솔직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있는 사람이 없는 얘기를 하는 셈이랄까요. 저마다의 영역이 있다고 할 때 싸이의 행보는 영역파괴가 아니라 영역침투일 수 있다는 거죠.
전 반항과 응어리가 선천적일 수도 있지만 후천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고통은 상대적이어서 저마다의 고통이 있는 거죠. 부모님의 요구가 상경대학인데 자신은 힙합을 하고 싶어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은 고통으로 화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응어리만 응어리가 아니죠.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면 막연히 분할 때가 있으니까요.

데뷔해서 엽기가수라는 수식이 붙었는데 기분이 좋던가요.
좋을 리가 있나요. 그렇지만 신인가수보다는 엽기가수가 낫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까지 가장 맘에 드는 곡은.
1집의 '끝'이에요. 록 스타일로 해본 곡인데 처음으로 공들여 만든 곡이에요. 이번 4집의 '친구 놈들아'도 맘에 듭니다. 록발라드죠. (웃으며) 이제 뵈는 게 없어요.

공연장에 찾아오는 팬들을 보면 어때요. 다른 어떤 가수보다 싸이한테 관객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오프라인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요. 서두에 말했듯 저는 무조건 콘서트를 우선순위에 둡니다. 이제 관객이 아닌 광(狂)객을 만들어야겠어요. 그래서 올해 12월30일과 31일에 있을 연말 콘서트 타이틀은 '광객 발대식'으로 할까 합니다. 제가 무대에 있는 만큼은 관객은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사는 이유를 주는 분들이라서 전 못할 것이 없습니다. 질서 안에서 모든 미친 것을 하려고 합니다.

인터뷰, 정리: 임진모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