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인터뷰
윤하(Younha)
데뷔 2개월, 신인가수 윤하의 인기가 대단하다. '비밀번호 486'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차트에서 수주 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하락세의 기미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척도인 길거리에서도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에 윤하의 모습을 담으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람들 때문에 자리를 옮기는 해프닝도 있었다. 방송 초심자에겐 부담스럽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의 고속 성장. 이정도 반향을 만들어내는 신인, 참으로 오랜만이다.
윤하는 준비된 신인이다. 이미 TV 프로그램 <인간극장> 출연으로 안면을 익혔으며,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리고 국내에 들어오는 독특한 '역수입' 과정을 거쳤다. 괄목할만한 것은 외국인으로서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든 일본 음악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이름을 알린 노래 'Houki boshi(혜성)'의 제목을 따온 '오리콘의 혜성'이란 수사는 윤하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5월 1일,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 일본 출국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그녀를 만났다. 열도와 반도를 동시에 포섭 중인 그녀는 최근의 일정에 대해 “너무 바빠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처음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곧 방송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답변만큼은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또박또박 명료했다.

이번에 가는 건 '플라워 페스티벌'이라고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지역축제 공연 때문이예요. 정식 콘서트는 아니고 한 다섯 곡정도 부르게 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120회 정도 공연을 했습니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공연 문화의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아직은 한국에서 노래하는 게 어색한데요. 관객들은 모두 호응을 잘 해줍니다. 일본은 자기 팬이 아니면 주춤하는 편이거든요. 냉정하다고 할까요. 생소한 노래나 처음 보는 가수에 대해서 마음을 잘 안 열어요. 우리는 정말 좋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일단 무대에 서면 처음 듣는 노래라도 모두 박수치고 환호해 줍니다.
양국에서 반응이 좋은 걸로 아는데 본인이 느끼기엔 어떤가.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피부로 잘 못 느꼈어요. 한국에서는 친구나 가족들이 많이 얘기를 해줘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제 노래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비교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급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보아 언니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죠. 일본에서 '뮤직 스테이션'이란 방송할 때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굉장히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피아노를 잘 친다고 칭찬도 들었고요. (웃음)
17살 때 일본에서 데뷔한 윤하는 주지하다시피 시작이 록이었다. 정식 앨범에 앞서 발표한 싱글 '오디션', 그리고 지금의 '비밀번호 486'에 이르기까지 록을 주재료로 하고 있다. 거친 기타 소리를 환대하지 않는 우리네 풍토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팝 성향이 강하다 해도 모험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이에 대해 “우리 회사가 큰 기업이었다면 이런 노래 밀지도 못했을 거예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당찬 소녀였다.
데뷔곡이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현재 주를 이루는 흑인음악, 섹시 콘셉트와 윤하의 상큼한 이미지를 차별화하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는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면도 없잖아 있겠죠. (웃음) 사실 저희도 '비밀번호 486'같은 스타일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린 신인이 부르기엔 좀 강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 록 음악인데 소속사 측에서는 아무래도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1집이 이렇게 잘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려 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음악을 원하는 것인지?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2집이나 핑크(P!nk) 같은 음악이 하고 싶었습니다. 곡을 처음 받았을 땐 걱정을 좀 했는데 'Sk8ter boi' 같은 풍으로 잘 나온 것 같아요.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Sk8er boi'는 2001년에 나왔다. 오래전 음악이란 생각은 없었나.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그래서 오래되었다는 느낌 보다는 그냥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저 스스로 즐기면서 작업하는 게 좋거든요. 많은 분들이 윤하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셔서 기뻤습니다.

진짜 음악을 잘하는 건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뮤지션 혼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음악보다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대중에게 너무 시선을 맞추다 보면 하기 싫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조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전하게 가지 않은 길인만큼 필사적으로 홍보하면서 활동하려 합니다.
피아노록이란 말은 누가 붙였나.
저희 쪽에서 붙인 말은 아니예요. 제 노래를 먼저 들어준 분들이 붙여준 용어죠. 제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 걸 보고 들은 분들이 피아노의 부드러운 요소를 떠올려서 그런 말을 생각해낸 것 같아요. 사실 그것 때문에 벤 폴즈(Ben Folds) 팬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습니다. (웃음)
가사는 휘성이 썼다. 어떻게 참여한 것인가.
제 의견이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어린 욕심'같은 경우는 휘성 선배가 직접 쓰고 참여한 노래이기도 한데요. 아직 선배와 만나기 전에 작업이 끝난 곡이예요. 그래도 최종 결과물은 저한테 있는 삐딱한 면이랑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앨범 작업의 주도권은 어느 정도였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앨범 세션은 전부 다른 사람이 맡았더라.
솔직히 아직 제 생각이 많이 반영된 건 아니예요. 앨범 커버가 너무 십대 풍으로 나온 것도 사실이구요. 일본에서 급하게 들어와서 시간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녹음을 한 달 안에 마쳐야 했으니까요. 악기 연주를 하려면 연습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시기를 맞추다보니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 차차 제 발언권이 커지겠죠.

(무척 반기며) 네! 저도 'Fly'를 굉장히 좋아해요. 곡을 처음 받았을 때 작곡가 분이 부른 가이드 보컬만으로도 너무 좋았거든요. 녹음할 때 당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기타 사운드랑 피아노가 안 맞아서 몇 번 다시 녹음하기도 했고요. '연애조건'이 후속곡이라고 기사가 난 것도 봤는데 아직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팬들의 의견도 '꼬마', '연애조건', '앨리스'로 나눠지고 있어서 고민 중이예요. 저는 'Fly'를 밀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국 록 느낌이 강해서요.
음악적 롤 모델은 누구인가?
핑크를 정말 좋아해요. 너무 착했던 1집 보다는 자기 색이 들어간 2집이 더 마음에 듭니다. 전 삐딱한 가사가 끌려요. 최근 들었던 음악 중에는 릴리 알렌(Lily Allen)의 'Smile'이 좋았어요. 감성적인 노래도 좋지만 그건 어느 정도 포장된 것이잖아요. 사람들이 꺼리는 것들,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게 좋았습니다. 욕을 좋아하는 건 아니예요. (웃음)
댄스를 시도할 생각은 없나.
어렸을 때는 춤을 좋아해서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쪽으로는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해봤는데 안 되던 걸요. (웃음)
일본에서 활동할 때 좋아하던 뮤지션은 누구였나.
동경사변(東京事變)의 시이나 링고가 굉장히 독특했어요. 처음에는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었는데 나중에 솔로앨범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둘이 동일인물인지 몰랐거든요. 개성이 강하면서도 설득력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우선 인순이 선배님, 이번 '거위의 꿈'이 너무 좋았어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본적인 보컬인 것 같아요. 가슴에 바로 들어왔습니다. 우연찮게 방송 현장을 보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감동했죠. 김건모 선배님의 '반성문'도 들으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툭툭 부르는데 연륜이 묻어나고 경험치가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보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는데, 너무 스트레이트하고 직설적인 것 같아요. 발라드를 녹음할 때 너무 티가 나던 걸요. 아직 섬세한 감정표현이 약한 것 같습니다.
천상 록을 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웃음) 그런데 앨범에 수록된 자작곡 '오늘만'은 발라드이지 않나.
록 적인 것을 썼지만 못 들어갔어요. 지금 만들어 놓은 곡이 100곡 가량 되는데 아직 들려드릴 정도는 아니예요. 더 노력해야죠.
음악계에서 어떠한 위치의 음악인으로 성장하고 싶은가.
진정한 제 작품을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인정받기 위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 싶은걸 자유롭게 표현하는 싱어 송라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전 무엇보다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音樂)이라는 말의 뜻처럼 즐기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1집이기 때문에 아직 도전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매 앨범마다 다른 색깔이 나올 것이니까 앞으로 선보일 늘 새로운 모습의 윤하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진행: 임진모
인터뷰 정리: 윤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