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아니면 추세에의 맹종이라는 트렌드는 기승전결의 뚜렷한 발라드가 끼어들 틈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았다. 2009년 상반기,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된 '눈물이 뚝뚝'의 선전은 그래서 더 눈여겨 볼만한 것이었다. '케이윌'의 데뷔작 '왼쪽가슴'이 알앤비 풍의 발라드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눈물이 뚝뚝'은 완연한 발라드로 돌아서기 위한 시험대였을 것이다.
순풍을 탄 듯 순조롭게 진행된 차트행진 덕에 이번 2집은 깨끗하고 유유한 발라드 17곡으로 가득 채운다. 작곡가 '김도훈', '황찬희'의 발군의 멜로디, '지오디'의 노래로 잘 알려진 작곡가 '권태은'의 감각적 편곡. 이 정도라면 대중적 설득요소를 모두 갖췄다. 이제 관건은 오롯이 노래 하나로 감정의 고조, '발라드'라는 한정된 틀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야 한다.
타이틀 곡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에서 들려주는 그의 보컬은 한결같이 안정된 톤을 구현한다. 설령 고음으로 치솟아도 목소리가 얇아지거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많은 솔로가수들 중에서도 어지간히 참신한 음색이 아니고서야 돋보이기 힘든 상황을 방증하듯, 그의 보이스 컬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충분히 힘 있고 탄력적이다. 코러스 디렉팅이 매력적인 '나무'도 마찬가지. 전체적인 편성과 보컬의 밸런스가 질적 역작으로 손색이 없다.
아쉬움이라면 수록곡이 하나같이 안정적이고 평이한 발라드의 모음이라 청감의 즐거움과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면', '이별 몰랐던 날'에서 템포를 조금 올려보아도 분위기를 쇄신하기엔 밋밋함이 앞선다. '눈물연못', 'My last love'의 전형적인 최루성 발라드도 제각기 양질을 띠고 있지만 딱히 반응을 주도할 노래가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황은 비슷하다.
<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는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는 접근법, 표현력의 완성도 측면에서 분명 뛰어난 앨범이다. 그럼에도 청취욕의 끈을 세게 붙잡지 못하는 건 '케이윌'이 자신의 구획을 너무 일찌감치 그어버린 것에 있다. 비슷비슷한 곡들을 나열하다보니 그가 들려주는 보컬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번쯤은 신선함과 패기를 무기로 탈출구를 마련해도 좋았을법한 호기가 끝내 아쉽다.
-수록곡-
1. 바람 (작사: The name / 작곡: The name, 강우현)
2.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조은희, 황찬희 / 황찬희) [추천]
3. 반복일 뿐이야 (최성일)
4. 최면 (아웃사이더, 최갑원 / 김도훈, 이상호)
5. 눈물 연못 (박창현)
6. 사랑해 반대말 (조은희 / The name, 강우현)
7. 끊었던 담배 (최성일)
8. 필름이 끊겼다 (최성일,이세환 / 최성일)
9. 이별 몰랐던 날 (김이나 / 이재명)
10. 초콜릿 (김도훈, 황성진 / 김도훈, 이현승)
11. My last love (박창현, 최성일 / 최성일)
12. 사랑 후유증 (강은경 / 오성훈)
13. 다시 사랑하면 안되니 (백무현, 정창욱)
14. 사랑한단 말을 못해서 (박민우, 구자창 / 이정규,최문규)
15. 나무 (방시혁 / 권태은, 방시혁) [추천]
16. 소원 (황성진, 이지은 / 김도훈)
17. 내 가슴이 운다 (The name, 강우현)
18.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