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신고가 조금 늦었다. 2002년 리쌍의 'Rush'에 피쳐링 보컬로 참여한 이후, 5인조 혼성밴드 지 플라(G-Fla)의 멤버로 활약은 해왔지만 '정인'이라는 이름 두 글자로 솔로 앨범을 내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담한 키에서 새어나오는 기이하면서 이색적인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그려낸 첫 번째 앨범은 새천년으로 접어들며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는 여러 여성보컬들과 어깨를 겨눈다.
정인의 솔로 앨범을 들은 청취자라면 이전의 결과물들과는 상이한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번 앨범은 리쌍의 길이 관여한 부분과 그 이외의 것으로 양분된다. 전자가 'Show', '살아가는 동안에', 'Girls on shock'이라면 후자는 '미워요'와 '고마워'로 단정할 수 있다. 양자 모두, 펑키하고 소울이 묻어나는 감성보다는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대중성을 강화했다.
드럼과 베이스라인의 바운스가 부각된 힙합 비트가 'Show'에서 트랙을 장악하고 있으며, 댄스홀에 어울리는 'Girls on shock'은 박정아(길과 뗄 수 없는 관계인)와 쥬얼리의 래퍼 하주연이 참여하여 의외의 준수한 매치를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살아가는 동안에'에서는 길 자신이 코러스에 참여하여 특유의 걸쭉하고 선 굵은 목소리로 조력하기까지에 이른다. 신인이지만 이미 낯익은 정인을 위한 길의 수위조정이 위의 3곡에서 암시된다.
이지 리스닝적인 면모는 타이틀곡 '미워요'에서도 맥락을 같이 한다. 명확한 기승전결과 흡인력을 머금은 멜로디 작법은 이적의 손에서 이뤄졌다. 더하여 대작을 염두로 한 방대한 스케일의 스트링 편곡까지 타이틀곡의 필수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3분 20초 동안 압축된 시간을 휴지(休止)없이 롱 테이크로 끌고 가면서 여성 청취자들의 감성을 대변해주는 가사요소가 각종 차트에서 정인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다.
마지막 트랙 '고마워'는 의외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곡일지도 모른다. 소담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지만 그 위에서 정인은 매우 자유롭게 노래한다. 어떻게 보면 앨범 내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순간일 수도 있으며, 10년 뒤의 포크 듀오를 꿈꾸는 그녀의 소박한 꿈이 담겨있는 복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후 행보를 지레짐작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안드로메다에서 온 그녀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
-수록곡-
1. Show! (Feat. Alex & Tablo)
2. 살아가는 동안에
3. 미워요 [추천]
4. Girls on shock (Feat. Enzo.B & 하주연 of Jewerly)
5. 고마워 (Feat. 남자친구)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