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정인 & 마일드 비츠
정인
마일드 비츠(Mild Beats)
2024

by 박승민

2024.09.29

익숙한 듯 생소한 조합이다. 두 아티스트 모두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흑인음악 신에서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은 까닭이다. 정인이 ‘Rush’, ‘오르막길’을 필두로 여러 히트곡의 보컬을 도맡으며 이름을 알렸다면 마일드 비츠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거점으로 걸출한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내놓아 왔다. 잔뼈 굵은 가수와 프로듀서의 만남은 서로의 공통분모에서 시작해 끈적한 그루브를 만들며 나아간다.


오프닝 ‘뭐? (Backing track)’부터 음반의 색깔을 밝힌다. 재지한 흐름 위에 몸을 맡기고 자유로이 스캣을 흥얼거리는 정인은 맞는 옷을 입은 듯 편안한 모습이다. 뒤이은 ‘Midnight running’ 역시 전형적인 알앤비 식 작법이 아닌 자신의 실제 삶을 내비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맥주도 한 캔 샀어야 했는데, 살짝 오른 취기가 필요해’란 노랫말을 부를 때 취한 이처럼 말끝을 길게 늘이고 같은 단어를 되뇌어 현실을 곡에 전사한다. 한국적인 골목길 사이 계단에 걸터앉은 커버 속 이미지를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다.


‘넌 개차반이야, 그것만이 참 트루’라 일갈하는 ‘작작’은 어떠한가. 그 대상은 각자 다르겠으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내뱉고 싶었을 말이 정인의 입을 빌려 발화된다. ‘작작 해 작작’을 연거푸 외치는 후반부에서는 사이키델릭 소울의 요소를 빌려와 신시사이저 라인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가사와 비트를 일치시킨다. 다소 마이너한 사운드를 차용하면서도 세심한 조율로 어색함을 없게 한 노하우다.


재즈 힙합 비트의 말미에 이르러 마일드 비츠에게로 초점이 이동하지만 만듦새는 여전하다. ‘적’에서는 한 루프만을 되풀이하는 대신 각각 브라스, 퍼커션, 키보드를 강조하는 세 파트로 나눔으로써 지루함을 덜어냈고 ‘탓’은 그의 최근작 < Fragment >를 연상케 하는 로파이한 질감으로 마무리를 도맡는다. 7트랙이라는 짧은 볼륨 안에서도 한쪽에 무게가 치중되지 않고 절묘하게 균형을 움직여 양쪽의 매력을 전부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모난 부분 없이 깔끔하게 매듭지은 음반이 두 뮤지션의 훗날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랜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규작을 발매하지 않으며 싱글과 5곡 이하 EP를 주로 선보였던 정인에게는 규모 확장의 계기가 될 것이며 마일드 비츠는 주무대 밖에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 싱어 - 1 프로듀서 조합이 낼 수 있는 모범적인 결과다. 장르에 대한 뜨거운 열의와 애정이 빚어낸 산물은 우리에게 ‘한국식 블랙 뮤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수록곡-  

1. 뭐? (Backing track)

2. Midnight running [추천]

3. 작작 [추천]

4. Fate fighter (Feat. Jony)

5. 적 [추천]

6. Love warrior

7. 탓 [추천]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