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불안할수록 말이 많아진다. 첫 싱글 ‘Yes, and?’는 이 명제 딱 중간에 걸친 곡이었다. 브로드웨이 배우 에단 슬레이터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아리아나 그란데는 “맞아, 그래서?”를 반복하며 깔끔한 반격을 시도했지만 차트 순위를 위해 대거 방출한 리믹스는 그가 지닌 입지가 위태로움을 암시했다.
빌보드 정상을 찍은 직후 노래가 곧바로 하락세를 타자 많은 이들이 그의 몰락을 예측하고 기대했다. 상업적 전략과 별개로 < Eternal Sunshine >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 이터널 선샤인 >에서 제목을 따왔듯 스타덤과 적지 않게 거리를 벌린 앨범이다. 명확한 팝 선율과 기교보다 절제된 보컬을 통한 자기표현을 먼저 챙겼다.
2018년 힙합 세계에 본격 발을 들인 후 아리아나 그란데의 성대 출력값 그래프는 계속 우하향을 그리는 중이다. 신보에서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초연하다. 전 남편과의 이별에서 새로운 만남을 헤집는 미디어에 대한 경계로 흘러가는 서사는 어쩌면 그조차도 자극적인 쇼 엔터테인먼트처럼 보이나 가성의 신중한 사용에 듣는 사람조차 경계심을 풀게 된다. 적어도 보컬 컨트롤에 있어서 그는 지금 어느 정도 통달했다.
경계를 낮춘 만큼 허점이 곳곳에 밟힌다. ‘situationship’과 같은 신조어의 사용은 ‘Don’t wanna break up with you again’의 너그러운 마음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고, 운율을 맞추려 가사에 넣은 ‘아타리(Atari)’ 비디오 게임도 진중해야 할 타이틀 곡의 무게를 낮춘다. 분위기상 앨범의 맨 앞이나 대미를 장식해야 할 유일한 댄스 팝 ‘Yes, and?’를 애매한 위치에 놓아 호흡을 끊는 처리방식도 쉽게 넘어가기는 어렵다.
절반 가량을 단독 작사했다는 점에서 < Eternal Sunshine >의 목표는 부담 없이 써낸 한 편의 일기임을 알 수 있다. 놓은 것인지 놓친 것인지에 대한 혼동은 맥스 마틴과 일리야 살만자데(Ilya Salmanzadeh)의 참여에서 비롯된다. ‘Boy problems’나 ‘Dancing on my own’ 등 2010년대 팝을 스트리밍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Bye’와 ‘We can’t be friends’는 여전히 탁월하다. 그러나 < Sweetener >에서 이들이 지휘한 ‘No tears to cry’, ‘God is a woman’과 비교 시 확연히 떨어지는 멜로디 감각과 나머지 트랙의 곡 단위 존재감 부족은 두 프로듀서의 에너지 소진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러 의문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 Eternal Sunshine >이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은 연인을 위해 자아를 희생하면서까지 전부를 비워낸 < Positions >의 여백을 채운 가수의 체온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앨범 커버처럼 아리아나 그란데는 스스로를 버팀목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주변인을 향한 팬들의 공격을 만류하는 SNS 메시지처럼 삶의 모든 이야기를 그는 혀끝에서 매듭짓는다. 온갖 헤드라인에도 쉽사리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록곡-
1. Intro (End of the world)
2. Bye [추천]
3. Don’t wanna break up again
4. Saturn returns interlude
5. Eternal sunshine
6. Supernatural [추천]
7. True story
8. The boy is mine
9. Yes, and? [추천]
10. We can’t be friends (Wait for your love) [추천]
11. I wish I hated you
12. Imperfect for you
13. Ordinary things (Feat. No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