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관철한 노력의 현신, 태연 단독 콘서트 'The Tense'

태연

by 정기엽

2025.03.10



“My name is fabulous, your favorite star”

- 'Fabulous' 中 -


포문을 연 ‘Fabulous’ 가사처럼 태연은 만인의 스타다. 수식에 걸맞게 아시아 각국의 아레나를 매진시키고 특히 대만은 4만 명 규모의 타이베이 돔에 해외 가수 최초로 입성, 시야제한석까지 개방하기에 이른다. 첫 지역인 한국에서는 최정상급 무대 중 한 곳인 KSPO 돔을 사흘간 가득 메우는 동시에 영화관 및 온라인 생중계를 회차마다 진행하며 모객에 최선을 다했다. 솔로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역시 티켓 전쟁이 쇄도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쇼였다.




무너지는 왕국의 군주 같던 7년 전 ‘Here I am’('‘S…' 콘서트)을 떠나보낸 듯 번성하는 생명력을 지닌 월계수를 쓰고 등장해 빛나는 자신을 표현했다. 첫 곡부터 거대한 스크린과 신전의 계단, 댄서들이 펼치는 군무를 동원해 연출 요소를 아낌없이 활용, 컨페티도 수차례 터뜨리며 내내 압도적인 무대를 이어갔다. 노래하는 사람의 독백 일인극 같이 공연장 크기에 비해 단조로운 구성의 직전 콘서트 'The Odd of Love'와는 상반된 결과다. 1년 7개월 전의 피드백을 말끔히 처리하며 스물다섯 곡 각각의 시각적 효과에 심혈을 기울였다.


응원봉 색 자동 제어로 관객석에 살랑이는 나비 날갯짓을 덮은 ‘Make me love you’, 커튼과 조명, 날개 조형물 등을 통해 타락한 대천사 콘셉트를 표현한 ‘INVU’, 거대 스크린 속 파도가 몰입을 더한 ‘월식’ 등은 세심한 테크니션과 퍼포먼스의 완벽한 조화였다. 세트 교체의 공백을 채우는 영상 또한 각기 다른 앨범 수록곡으로부터 유기성을 빚어냈다. 성대한 서막 이후 10년 전과 현재의 태연이 교차하는 영상은 데뷔곡 ‘I’와 최신곡 ‘Letter to myself’의 흐름에 감정을 싣게 만들기 충분했다. 게다가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매 공연마다 태연이 조향에 참여한 향기가 흩뿌려지며 후각적 효과까지 각인시킨다. 시청각을 만족게 하는 건 물론이고 오감을 향해 늘 한발 더 나아간다.


감각의 충족은 중요하지만 라이브 공연의 핵심은 역시 청각적 쾌감이다. 대중이 잘 알다시피 훌륭한 가창력을 뽐낸 태연과 더불어 줄곧 합을 맞춘 키보디스트 홍소진을 필두로 한 밴드의 편곡이 발군이었다. 다이나믹한 질주를 선사한 ‘Hot mess’, 각각 베이스와 청량함을 강조한 ‘To. X’, ‘Heaven’ 등 신곡은 곡이 가진 강점을 보존했으며, 폭발하는 연주로 스산함을 덧댄 ‘Cold as hell’과 드럼과 퍼커션의 공명(共鳴)이 리듬감을 만든 ‘Weekend’ 등 기존 곡은 더 섬세한 조율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면모를 드러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주악과 무그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구현된 빈티지스러운 음색이 인상적인 편곡이 귀를 가득 채웠다.




목소리를 통한 다채로운 감정 표현은 태연 보컬의 가장 큰 무기다. 후반부에 다수 배치한 가창 중심 곡들이 청중의 귀를 먹먹하게 적셨다. 호응을 유도하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태연이 마이크를 다시 잡아 드는 찰나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변하던 ‘Disaster’는 앞서 언급한 넓은 스펙트럼이 어디서 왔는가를 일언반구 없이 방증했다. 먹먹한 모던 록 ‘Time lapse’부터 덤덤한 정서로 여운을 주는 ‘All for nothing’을 지나 숨차는 고음역을 연달아 뱉는 ‘Blur’는 그의 빼어난 가창력에 현장 관객 전원의 환호성을 자아낸 분명한 하이라이트였다. 하이노트의 절제를 모르는 독주는 몇 번이고 들어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 모든 곡을 끝마치고 앙코르 마지막으로 택한 ‘U R’는 한계를 실험하듯 극(極)을 조우하는 배치였음에도 깔끔하게 매듭짓는 데 성공했다.


커다란 폭의 감정선을 가지게 된 연유를 중간 멘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 비해 극단적 내향형이 됐다고 회고한 태연은 “공연 때마다 성격이 바뀐다”고 언급했다. 찰나에도 기분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모습을 두 시간 반 내내 보인 데다 풀어낸 이야기와 겹쳐 그 내면을 헤아리게 됐다.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짧게 서술하고 보러와 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Ending credits’ 이후 모든 부분에 관여한 태연의 크레딧 마지막 칸에 팬덤명을 기재하고 ‘Curtain call’을 부를 때 객석을 배경으로 노래하곤 고마움을 전했다. 애틋하고 편안한 얼굴에 안도감이 드리웠다.




신보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는 곡의 세트리스트 생존(?)을 걱정하는 태연 팬덤의 기분 좋은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한다. 그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하더라도 아쉬움을 최소화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최근작 < To. X >, < Letter To Myself >를 중심으로 ‘사계’, ‘What do I call you’, ‘Why’ 등 기존 히트곡, 흥을 돋우는 ‘스트레스’까지 총망라해 크리스마스 앨범인 < This Christmas - Winter Is Coming >만을 제외한 전집을 25곡 안에 채웠다. ‘Fine’, ’불티’ 같은 일부 히트 넘버가 빠졌더라도 풍성한 짜임새였음을 쉬이 부정할 순 없다.


10년 전 800석 극장에서 일곱 번 진행한 첫 단독 공연을 시작으로 사흘간 총 3만여 명을 운집할 정도로 꾸준한 상승세를 탔다. 회차마다 팬들이 카드섹션 이벤트로 화답한 대로 솔로 10주년과 태연의 생일 당일에 이뤄져 더 각별했던 'The Tense'였다. 10th와 발음이 유사한 동시에 시제(時制) 등 여러 뜻을 내포한 제목에는 ‘긴장’이라는 뜻도 있다. 적당한 긴장감은 더욱 철저한 준비를 야기하고 완벽한 실현을 도출하기에 더없이 탁월한 단어 선정이다. 그 뜻을 모두 받들고 태연이 걸어온 길을 말끔하게 함축해 담았다. '11:11'로 활동하던 시기 한 방송에서 ‘111:1’로 잘못 표기돼 떠돈 농담에 진지함을 섞자면, 이번 공연은 111%의 부담감을 완성도로 무릎 꿇게 한 태연의 인간 승리였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