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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Smile
윤종신
2005

by 이민희

2005.04.01

새 음반을 발표하기까지 무려 4년 간을 매복하고 있었지만 긴 공백으로 느낄 새도 없이 윤종신은 친숙한 '방송인'이 되어 있었다. 본업인 '가수'로서의 입지를 걱정할 만큼, 음반 작업을 쉬는 기간동안 각종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 음반 제작, 라디오 진행, 심지어는 연기에 도전하며 전방위 엔터테이너로 활약, 활동의 지평을 넓혀 왔기 때문이다. 열 번째 음반을 목전에 둔 중견 가수의 여유에서 비롯된 쉬어가는 페이지였을까. 사실 그런 예외의 작업은 생뚱맞게 디스코를 접목한 '내사랑 못난이'에서부터, 더 가깝게는 그 해 여름의 송가 '팥빙수'를 발표한 그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어쨌든 윤종신은 발라드로 승부하는 동시에 이따금씩 일탈을 즐겨 왔던 노련한 가수다. 사랑의 상처에 힘겨워하는 세상의 젊은이들을 폐부를 지르는 가사로 공감케 하고 서늘한 노래로 다독여 주면서도, 탤런트 혹은 개그맨에 준하는 농담과 재치로 웃음에 목마른 다양한 세대들과 교감할 줄 안다. '너의 결혼식', '오래 전 그날'을 모르는 초등학생들도 <논스톱>의 윤교수는 알지 않을까. 연간 지침없이 꾸준하게 음반을 발표해 오다가 어느 순간 분야를 막론한 각종 삼천포(?)에 빠져 오랜 공백을 가졌던 이유는, 가수에게 있어 노래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친해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살짝 짐작해 본다.

4년 만에 발표한 열 번째 음반 < Behind The Smile >은 여느 때보다도 본업에 충실하다. 윤종신다우며 윤종신적이다 이상으로 설명할 길 없는 그만의 독특한 발라드 세계를 완성했다고나 할까. 이제는 어렴풋하지만 그 시절의 흐름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1990년대 초반 데뷔 당시의 감수성을 보존해 굳혀 온 윤종신은 오랜 공백기간 동안 작곡하고 구상해 온 열두 곡의 발라드를 모았다. '휴일', 'You're so beautiful', '너의 여행', '나의 안부' 등 살아 있는 과거 지향의 선율은, 온갖 알앤비와 파생된 여러 변종들의 홍수 속에서 정통 발라드가 그리워지는 현재 더없이 자극적인 노래로 다가온다.

이 역행의 정점은 역시 타이틀 곡 '너에게 간다'이다. 기승전결을 따라 읊조리듯 시작하다 힘을 실은 후렴구에서 터지고야 만다. 집약과 안정이라는 두 가지 핵심을 전제로 하는 가장 익숙하고 정석에 가까운 구조다. 가사-멜로디-편곡이 감정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연애의 패배자가 겪는 슬픔을 극대화하고, 절정에 이르러 폭발해 궁극적으로 후련함까지 안겨주는 이런 정중동의 전통적인 발라드는 실로 오랜만이다. 성시경, 팀과 같은 젊은 피들의 리듬감을 거스른 완만한 노래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 역사적인(?) 열쇠가 여기에 있다.

전반기 작업의 지주였던 정석원, 그리고 후반기 작업의 후배 뮤지션이었던 하림의 지원사격으로 아홉 번의 작업을 총망라하는 와중에 두 명의 신예 조력자가 눈에 띈다. '오늘의 날씨'를 전하는 기상 케스터 클래지콰이(Clazziquai)와 'Lunch menu'라는 차림표(?)를 준비해 온 오후의 요리사 박민준(aka DJ Soulscape, Espionne)이 그 주인공이다. 기계적인 목소리를 발산하는 '몬스터'와 함께 가장 예외적인 이 두 곡은 각각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와 라운지의 감각을 송두리째 수혈해 복고적 색채로 가득한 음반에 '신보'임을 명백히 하는 생기를 부여한다.

데뷔 15년차 윤종신은 열 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아직도 지칠 줄 모르는 그는 숨이 차 오르도록 뛰면서 새 음반을 들고 '너에게 간다'고 말한다. '반가움 억누르던 나, 너를 향한다'는 정력 넘치는 가사와 함께. 1969년생, 서른일곱의 적지 않은 나이의 그에게 누군가 지나온 인생을 묻는다면 예술가답게 열한 번째 곡인 '서른 너머... 집으로 가는 길'로 시적인 대답을 건넬지, 아니면 전문 직업인답게 열 장의 음반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궤적을 증명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나 어떤 반응이던 간에 15년은, 그리고 열 장의 음반은 쉽게 흘려 보내고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세월도, 그 세월의 흔적도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는 관록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동안 음악과 호흡하고, 무료해지면 카멜레온이 되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얼굴로 둔갑해 대중과 마주하면서 상당한 이력을 쌓아 온 윤종신, 그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허망한 고사성어를 긍정의 언어로 뒤집었다.

-수록곡-
1. 휴일 (윤종신)
2. 오늘의 날씨 (윤종신)
3. No schedule (정석원)
4. You are so beautiful (윤종신)
5. 몬스터 (윤종신)
6. 너의 여행 (정석원)
7. 너에게 간다 (윤종신)
8. Lunch menu (윤종신)
9. 너의 안부 (정석원)
10. 消耗 (정석원)
11. 서른 너머... 집으로 가는 길 (윤종신)
12. Love boat (하림)
13. You are so beautiful (하모니카 버전) (윤종신)

프로듀서, 전 곡 작사 : 윤종신
이민희(sham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