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나방의 꿈
이승기
2004

by 신혜림

2004.07.01

1980년대 가요계의 헤로인 이선희와 엽기 가수 싸이가 만나 뉴 페이스를 무대 위에 세웠다. 바로 데뷔작 <나방의 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고식을 치른 소년 뮤지션 이승기이다.

이승기는 상계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현재 전교 회장을 맡고 있다. 성적도 전체 10등 안에 든다고 하니,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어린 인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그러나 디자인된 미래에 반기라도 들 듯,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길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으며 작은 반란을 꿈꾸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학교 밴드부에 들어간 이승기는 소극장 공연 중 이선희의 눈에 띄어서 1년 반 동안 집중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 대중 가수들에게 한 가지 씩은 꼭 있어야 할 '끼'가 부족한 수줍은 성격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프로듀서를 싸이가 맡게 되었던 것. 결국 이선희의 가창력과 싸이의 재기를 함께 물려받은 슈퍼 루키로 현재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깔끔한 외모와는 달리 중저음의 허스키한 음색을 가지고 있는 이승기는 풋풋한 록발라드로 대중에게 첫 인사를 하고 있다. 현재 전파를 자주 타고 있는 '내 여자라니까'가 그 주인공 트랙이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내용의 귀여운 가사가 고등학생 가수라는 것을 단번에 대변해 주고 있다.

두 리메이크 곡에도 눈길이 간다. 첫 번째는 패닉 1집 타이틀곡이었던 '아무도'이다. 바운스의 강진우가 랩을 도와준 이 곡에서 이승기는 원곡에 충실한 해석을 들려준다. 다른 하나인 'J에게'는 이선희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실은 넘버로 예전 언타이틀로 활동했던 유건형이 편곡을 맡아 중량감과 가벼움이 잘 어우러진 록 스타일로 곡을 재단했다.

넥스트가 화려하게 꾸민 첫 곡 '시작'을 필두로 앨범명과 같은 '나방의 꿈'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를 내세워 그의 소망을 노래했고, 싸이가 직접 피처링에 참여한 '아버지'도 위트있는 곡이다. 편안하게 펼쳐지는 모던록 '여행가는길'은 안일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잘 담겨 있다. 특히 이제 신인임에도 관객의 함성을 함께 담은, 신해철의 기지가 돋보이는 'Anding'과 '앵콜'도 관심있게 들어볼 만 하다.

이렇게 상당한 가수들의 지지를 업고 데뷔했으나 그를 대번에 범상치 않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우선 앨범에서 유명가수의 이름을 제외하면 이승기만이 정체성이 의문시 될 만하다. 또 십대를 겨냥한 듯한 타이틀곡은 어린 가수의 특성을 드러낼 수는 있으나 많은 세대들의 공감을 사기에는 역부족이다. 차라리 사춘기 시절 대부분 겪는 진지한 고민이 담긴 '나방의 꿈'이 더 호소력이 짙다. 하지만 꾸준하고 자체적인 노력만 동반된다면 아직 갈 길이 먼 젊은이이기에 미래는 도리어 밝을 것이다.

-수록곡-
1. 시작 (작곡: 신해철)
2. 나방의 꿈 (작사: 싸이 / 작곡: 유건형)
3. 아무도 (이적 / 이적)
4. 내 여자라니까 (싸이 / 싸이)
5. 아버지 (싸이 / 유건형)
6. 삭제 (싸이 / 싸이)
7. 여행가는길 (김준혁 / 김준혁)
8. 내안의 그대 (김현민 / 박영수)
9. 음악시간 (싸이 / 유건형)
10. J에게 (이세건 / 이세건)
11. Anding
12. 앵콜 (싸이 / 신해철)

프로듀서: 싸이
신혜림(snow-forg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