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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brid Theory
린킨 파크(LINKIN PARK)
2000

by 안재필

2002.03.01

"린킨 파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록 밴드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브래드 델슨의 해명아닌 해명은 린킨 파크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 그룹명을 하이브리드 시어리로 정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며,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하이브리드 시어리를 밴드명이 아닌 데뷔앨범의 타이틀로 변경하면서까지 고수했을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 여섯 명이 성장하면서 들어왔던 많은 장르들의 크로스 섹션(Cross-section)이 밴드의 음악"이라는 델슨의 부연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바로 린킨 파크의 사운드가 록의 카테고리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다양한 스타일과 접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같은 점은 그들의 시스템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들은 보컬 체스터 베닝턴, 기타 브래드 델슨, 베이스 피닉스, 드럼 롭 버든으로 짜여진 록 밴드 편성에 래퍼 마이크 시노다, 턴테이블리스트 조셉 한을 더하여 장르간에 합종연횡할 수 있는 길을 닦아놓았다. 특히 다른 하드코어 그룹들의 DJ들이 대부분 힙 합에 집착하는 제한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데 반하여, 조셉 한은 힙 합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니카에도 과녁을 맞추며 린킨 파크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때문에 그들의 데뷔작은 여러 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자신들의 하이브리드 이론을 세상에 공개하는 첫 결과물이며, 그 이론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단 린킨 파크의 음반은 낯설지가 않다. 신인 밴드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함이 없다. 몇 장의 작품을 발표한 경력이 있는 그룹의 음악처럼 노련미가 느껴진다.

이는 그들에게 신선함이 없다는 약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음악 내공이 탄탄하다는 것과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고, 시도하는데 전혀 이질감을 못 느끼게 할 정도로 연주력과 팀워크가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래시 메탈 기타의 강력한 질주 속에서 토해내는 체스터 베닝턴의 보컬과 클린 톤 기타의 부드러운 떨림 속에서 내뱉는 마이크 시노다의 래핑이 인상적인 'Forgotten', 테크노, 헤비메탈, 힙 합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Crawling', 인트로부터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그루브의 향연이 펼쳐지는 'Points Of Authority'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체스터 베닝턴의 보컬이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린킨 파크의 사운드와 떼어놓고 판단해 본다면 하드코어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거친 그로울링도 없고, 시원스런 샤우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랑말랑하며 유연하다. 오히려 그런지나 모던 록에 가깝다.

하지만 린킨 파크가 하드코어 네트워크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인 훅(Hook)과 팝 선율은 체스터 베닝턴의 보이스에 기름을 칠해줬고, 날개를 달아줬다. 대중들이 하드코어 그룹들에게 갖는 선입견, 즉 시끄러움과 난폭함을 거세시키며 거부감없는 하드코어 사운드를 일궈낸 것이다.

이미 차트에서 철저하게 검증받은 'Crawling', 'One Step Closer', 'In The End' 등을 비롯해, 오프닝 곡 'Papercut', 일렉트로닉과 헤비 사운드가 결합한 'Runaway' 등이 단적인 예이다.

이처럼 린킨 파크가 사운드와 멜로디 측면에서 기성밴드 못지 않은 안정감과 부드러움을 낚을 수 있었던 데는 프로듀서를 맡은 돈 길모어(Don Gilmore)의 영향이 컸다. 돈 길모어는 펄 잼(Pearl Jam), 슈거 레이(Sugar Ray), 리트(Lit), 이브 식스(Eve 6) 등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현재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인물. 그는 린킨 파크의 앨범에 정교한 기교와 상업적인 멜로디를 첨부시켜 밴드에게 브레이크 없는 신화를 만들어가게끔 밑거름을 제공했다.

린킨 파크는 미국에서만 1집 앨범을 700만장 이상을 판매하며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앞에서 언급한 세련된 사운드와 듣기 좋은 멜로디가 일등공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앞으로는 여기에 그들만의 음악 특구를 설립하기 위해 재테크에 힘쓰기보다는 '독창성'을 추가시키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래야 중도하차하지 않고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

-수록곡-
1. Papercut
2. One Step Closer
3. With You
4. Points Of Authority
5. Crawling
6. Runaway
7. By Myself
8. In The End
9. Place For My Head, A
10. Forgotten
11. Cure For The Itch
12. Pushing Me Away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