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5번째 앨범도 여느 때와 같이 트랙 수가 푸짐하다. 이번엔 16곡이다. 부클릿에 인쇄된 독사진을 보면 변함없는 느낌의 머리 스타일과 안경테가 즉금 충실한 인상을 안겨다 준다. 저명한 사진작가 김중만의 수기(手技)는 한결같이 탁월하다. 그러한 굳은 시감에 걸맞게 앨범 타이틀은 '발라드'다. 원래 가수 성시경의 특기가 발라드 아니었나 싶을 만큼 제목이 살짝 유난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 장르에 대한 패기 또한 엿보인다. 작품은 고운 연가들로 그득하다.
2001년에 데뷔해 그는 매해마다 한 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해왔다. 벨벳처럼 말끔한 감촉을 띤 그의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여성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처음처럼',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넌 감동이었어', '잘 지내나요' 등에서 보이듯, 그가 가장 소담하게 건넨 것은 '연정'이었다. 작품마다 개화한 곡들은 여러 색깔의 장미들처럼 일관되면서도 다채로웠다.
그러나 그 다채로움은 해를 거듭할수록 신선도를 잃어 갔다. 분명 한 앨범 안에 수록된 곡들 간에는 변모가 있었지만 정작 그의 커리어 위를 점한 작품 사이엔 쇄신이 없었다. 온전한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도 그래서 걸대히 조명 받지 못했다.
5집으로 건너오기 위한 건널목도 끝내 동일한 평지 위에 있었다. 신보는 'The ballads'라는 제목답게 특급 발라드 작곡가들을 대동하지만 그의 음악적 답보를 타파하진 못한다. 김형석, 윤종신, 하림, 이승환(The Story), 김조한 등의 창작자 리스트가 한 가수의 성장 보증서는 아니 된다. 그런 면에서 나원주의 편곡 또한 빛을 바랜다('거리에서', '사랑할 땐 몰랐던 것들', '굿모닝'). 전곡이 제각기 양질을 띠고 있지만 주인공의 셀프 프로듀싱 밑에서 여전히 핑크빛 감동과 동감만을 주문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청감에 있어서의 즐거움이나 여유가 부족하다. 윤종신과 이근호가 합작한 타이틀곡 '거리에서'를 출발하여 루시드 폴의 곡을 리메이크한 '오, 사랑'에 닿을 때까지, 앨범의 분위기는 침착하니 고르게만 퍼져 나간다. 'Who do you love'가 템포를 서둘러도 그 밋밋함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성시경의 음악'은 감상자의 귀에 그저 안전하게 접어들 뿐이다.
프로듀서 자리에 직접 앉았으면 직권상정도 수월했을 법한데, 그는 이번 호기를 쉬이 놓쳤다. 목소리와 악곡의 분위기, 가사, 전체적인 콘셉트 등 주요소들이 여러모로 자승자박됐다. 결국 작품의 흥미 없는 표정변화는 밀고자가 되고 말았다.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다.
-수록곡-
1. 거리에서 (작곡 : 윤종신, 이근호 / 작사 : 윤종신)
2. 그리운 날엔 (김형석 / 심재희)
3. 사랑할 땐 몰랐던 것들 (성시경 / 심재희)
4. 그 길을 걷다가 (김조한 / 심재희)
5. 바람, 그대 (하림 / 이미나)
6. 나 그리고 너야 (이현승 / 김진용)
7. Who do you love (윤영준 / 성시경, 윤영준)
8. 그 이름 모른다고 (이승환(The Story) / 윤사라)
9. 비 개인 날 (김진환 / 심재희)
10. 새로운 버릇 (김형석 / 윤사라)
11. 굿모닝 (윤종신, 이근호 / 윤종신)
12. 기억을 나눔 (성시경 / 윤사라)
13. 살콤한 상상 (황찬희 / 심재희)
14. 지금의 사랑 featuring 앤 (하림 / 이미나)
15.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김형석 / 윤사라)
16. 오, 사랑 (루시드 폴 / 루시드 폴)
프로듀서 : 성시경 (트랙 1번, 11번 윤종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