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이 제주도로 떠났다. 그 곳의 푸른 밤과 닮은 노래들을 한데 모아 자신의 목소리로 덧입힌 리메이크 앨범을 들고 컴백한 그의 노래는, 빛이 바랜 추억들을 두툼한 북클릿에 꾸밈없이 적은 후의 개운함 때문인지 한층 여유로워짐을 과시한다. 이 덕에 특유의 미소도 조금 더 맑아진 느낌이다.
“좋아했던 노래들을 한번쯤 자기 목소리로 불러 보고 싶은 마음은 굳이 가수가 아닌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의미를 밝힌 <제주도의 푸른 밤>에는 음악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법 한 굵직한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은 이미 다른 가수들에게도 수없이 불려진 리메이크 필드의 단골손님. 이는 그만큼 원곡이 탁월하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성시경 역시 원전에 충실한 해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 색깔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그의 보이스는 여전히 음역의 폭이 좁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장기인 중음대의 감미로움에 무게중심을 두며 음악의 맛을 잘 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타이틀곡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나머지 몇몇 곡에서는 그의 고음이 조금 더 확실했다면 훨씬 좋은 소리를 입힐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 클래식의 '여우야' 같은 경우, 어레인지는 출중하지만 약해지는 고음 때문에 듣는 이들로 하여금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특성을 반감시키고 있으며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에서도 '뛰어가고 날아가는' 가사의 전달감이 미약하다.
이처럼 오리지널을 모두 재 편곡하며 음악적 욕심을 부렸지만 성시경의 편안한 음색에 집중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획일화되어 듣는 이의 묘영에 단일한 임팩트만을 남길 뿐이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의 초반부에서 들렸던 어쿠스틱 기타의 감성적인 선율도 없어졌고 다섯 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탄탄한 연주가 사라져버린 탓에 평범한 발라드로 변모했다. 물론 성시경의 리메이크 앨범이므로 그를 가장 우선시 해야겠지만 원곡을 규정하던 강한 이미지들이 빠져버려 자칫하면 심심한 앨범으로 들릴 확률이 높다.
그러나 동물원의 '혜화동'이나 김혜림의 '날 위한 이별', 이문세의 '소녀',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등은 문득 들어도 귀를 사로잡을 만큼 그의 보이스 톤이 잘 녹아있다. 특히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는 잔잔한 코러스로 가스펠과 같은 경건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팝 적인 편곡으로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박학기의 '그대 창가로 눈부신 아침'은 인상적인 박학기 본인의 코러스와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보통 한 앨범의 성공과 실패는 대중들이 결정한다. 하지만 이 <제주도의 푸른밤>만큼은 성시경 본인이 성패를 가늠해야하는 음반이다. 속지에서 자신이 밝혔듯이 '감동'을 주는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엔터테이너적 캐릭터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앨범은 지금의 성시경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가수로서의 초심을 일깨워줄, 음악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성시경의 용단을 기대해본다.
-수록곡-
1. 제주도의 푸른밤 (작사: 최성원 / 작곡: 최성원)
2. 별이 진다네 (조병석 / 조병석)
3. 여우야 (김광진 / 김광진)
4. 혜화동 (김창기 / 김창기)
5. 날 위한 이별 (박주연 / 김형석)
6. 향기로운 추억 (조동익 / 조동익)
7. 소녀 (이영훈 / 이영훈)
8.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이지영 / 신재홍)
9.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조덕배 / 조덕배)
10. 너의 뒤에서 (김형석, 박진영 / 김형석)
11.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조동희 / 조동익)
12.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박주연 / 김형석)
13. 어떤 그리움 (오승은 / 임기훈)
14. 그대 창가로 눈부신 아침 (박학기 / 박학기)
프로듀서: 김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