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성시경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평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성시경에겐 일생을 따라다닐 고민이 될 수도 있다. 가수들은 항상 나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음악에 감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내가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편이 되어 줄지 생각한다. 그래서 음반이란 어떻게 보면 대중들에게 보내는 사랑 고백, 그리고 그들을 향한 응석과 보챔일 수도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성시경은 지금까지 '쉼'의 음악을 해왔다. 자극적이지 않은, 따스하고 젠틀한 목소리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의 음악은 웃음이라기보다는 미소다. 중저음의 매력을 통해 부드럽게,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살며시 감정을 자극시켰다. 그가 밟아왔던 음악의 행로들이 보사노바, 발라드, 아니면 가볍고 상쾌한 그루브였다는 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미지와 어깨동무하는 괜찮은 음악 전략이었고, 그에 걸맞은 인기와 성공을 얻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것이야말로 성시경의 인기 기반이고, 사람들이 성시경을 찾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감추고 있던 음악적 욕심은 접어두고, 일단 그 기반부터 안전하게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이번 음반의 타이틀 곡 '잘 지내나요'가 이런 심리를 잘 말해준다. 뿌리 깊게 그를 짓누르는 대중의 압박은 성시경의 음악적인 욕심을 곁길로 새도록 만들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타이틀 곡 만을 듣고 나머지엔 선뜻 귀가 가지 않는 소극적인 감상자라면 아마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조금의 음악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같은 양질의 곡이 왜 옆으로 새야만 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음반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타이틀을 제외한 나머지의 곡들은 대부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다양한 시도로 채워져 있다. '안녕'에서는 하림의 쓸쓸한 하모니카 소리가 인상적이고, '일학년 일반'은 정글 리듬을 응용한 듯한 다변한 리듬과 김진표의 랩 참여. '바보라죠'의 유리상자 풍의 감성적인 포크 팝과 '콩깍지'의 컨템포러리 재즈 까지.
음반의 후반부에선 '어느 흐린 날의 행복'에서 스윙 반주에 맞춘 시원한 뮤지컬 분위기를, '당신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어요'는 록(Rock)적인 업 템포와 레이디 코러스까지 추가하여 듣는 사람을 경쾌하고 상쾌한 감성으로 몰아간다.
지금까지 언급한 음악들에 포함되어 있는 멀티 감성들과 장르들을 헤아려보기 바란다. 물론 성시경의 보컬이 각각의 장르와 감성들을 한껏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최상급 표현력이라고는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다채로운 시도들과 음악적인 욕심들은 간과하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어렵다. 이 음반은 정말 성실함이 부각된 '웰 메이드' 음반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혼자 소외된 타이틀 곡 '잘 지내나요'는 무언가. 물론 이 곡을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곡은 인기의 기반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불안감의 산물에 불과하다.
왜 스스로를 뮤지션으로 승격시키지 못하고, 자꾸만 안정된 길을 찾아가려고 하는가. 아니, 이 땅에서 '뮤지션'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자유로운 삶의 모델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단 말인가. 성시경은 다른 평범한 발라드 가수와 다르다고, 성시경은 음악적인 욕심과 포부를 지닌 강한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런 '역행'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성시경 혼자만을 비난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성시경의 비겁함은 증상으로서 드러난 하나의 기표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뿌리는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 이는 가요계 전반의 문제이며, 가수들의 소망을 옭아매고 있는 대중들의 욕망, 그들의 법칙에 맞추어야만 음반을 팔 수 있는 소속사의 좁은 운신 폭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상황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소망들을 재조정한다고 했던가? 사람들이 성시경에게 원하는 바가 왜 중요한 문제인지 이제 모두 해명한 것 같다. '잘 지내나요'는 '한국 가요계'라는 비(悲)예술적인 무대에 갇혀 있는 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진심이 어찌 되었든 작금의 상황과 분위기는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안타깝다.
-수록곡-
1.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작사 : 심재희 / 작곡 : 김형석)
2. 잘 지내나요 (심재희 / 김형석)
3. 안녕 (원태연 / 이현승)
4.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심재희 / 김찬진)
5. 일학년 일반 feat. 김진표 (김현아 / 이현승)
6. 눈물편지 (조은희 / 황찬희)
7. 바보라죠 (차상민 / 김태현)
8. 후회하지 말아요 (심재희 / 조영수)
9. 콩깍지 (안영민 / 안영민)
10. 고마워 (심재희 / 성시경)
11. 어느 흐린 날의 행복 (양재선 / 김형석)
12. 당신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어요 (심재희 / 김형석)
13. 쉬어요 (이효석 / 황찬희)
14. 두 사람 (윤영준 / 윤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