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소시'로 명명된 외적 스타일을 제외하고 음악적인 면에서 소녀시대의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싱글이다. 케샤(Ke$ha)가 (데모 버전으로) 불렀던 'Run devil run'은 부분적으로 가사만 바꿔 어느덧 소녀시대의 곡으로 둔갑해있다. 소녀시대의 소속사 측은 케샤가 이곡의 '가이드 버전'을 녹음해서 화제가 됐다지만, 케샤의 곡은 '가이드 버전'이 아닌 정확히 말해 앨범의 곡 선정 작업에서 제외된 '데모 버전'이었다.
간소한 악기로 노래의 멜로디를 기록하는데 목적이 있는 가이드 버전과 달리 앨범 버전의 전초전 격으로 사운드와 효과, 보컬을 제대로 구성해 만드는 데모 버전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물론, 데모 버전도 각 가수 마다 다르지만 인터넷에 유출된 케샤의 'Run devil run'은 앨범 버전에 버금가는 데모버전이었다. 따라서 소속사가 가이드 버전 운운하는 것은 음악적인 비난은 피하면서 요즘 한창 상종가인 케샤의 '이름값'에만 편승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은 케샤의 데모 버전을 고대로 빼다 박았다. 소녀시대의 곡에 쓰인 인스트루먼틀(Instrumental)은 케샤의 것과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곡의 시작을 여는 인트로와 클랩(Clap) 사운드 역시 같다. 곡의 길이나 사이사이 심어놓은 이펙트, 코러스의 배치도 마찬가지다.
가사 내용도 문제. 한글가사로 다시 쓰면서 제목과 후렴구의 주요부분은 유지한 탓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케샤의 가사에선 자신을 농락한 남자에 대한 강력한 분노와 경고, 실행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왜 남자에게 악마(Devil)라고 하는지, 왜 'You better run, run devil run' 이라고 하는지 이유도 명확하다. 의도적으로 접근해 자신을 농락한 남자를 캐논 포를 쏴서라도 격침시킬 것이니, 어떻게든 잡아 처리할 것이니 7대양을 건너서라도 도망가라 한다. 남자로서는 줄행랑의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는 셈이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가사는 단순히 나쁜 남자 이야기다. 게다가 버스 부분에선 실망한 것들의 나열과 자신을 버린 남자를 타이르는데 그칠 뿐 추격해 처리하려는 의지는 실종되었다. '용서를 구하고 이제부터라도 잘한다면 받아준다'는 느낌마저 풍긴다. 그러다 갑자기 코러스 부분에 와서 '도망가라'고 하다가 '멋진 내가 되는 날, 갚아주겠다'며 오락가락해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결국 남자로선 안보면 그만이지 굳이 도망칠 이유까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후렴구 'You better run, run devil run'의 맛을 놓치지 않으려다 곡의 내용이 뒤틀어진 결과다.
구성면에서 상기한 바와 같다면 목소리에 고심한 흔적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심어야 했으나 보컬 면에서도 곡의 맛을 잘 살리지 못했다. 앙칼지고 악에 받친 듯 비아냥대는 케샤의 보컬과 달리 소녀시대 9명의 보컬은 어떠한 우월함도 보이지 못한다. 태연과 제시카는 고음부분에서 제법 안정적인 면을 보이지만, 첫 번째 후렴구 앞 수영과 효연의 파트, 두 번째 후렴구 뒤에 이어진 써니의 파트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비아냥거리는 것보단 귀여운 척하기에 급급하게 들린다.
후렴구를 탄력 있게 당겨 부르고 다층 구조로 구성한 점은 곡을 찰기 있게 해준 일등 공신으로 이는 케샤의 보컬 스킬을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케샤의 '데모 버전'에 소녀시대의 목소리만 얹은 습작 같은 싱글이 되어버렸다.
이런 음악으로 이뤄낸 성과가 본인들의 상업적인 이익 외에 한국 가요계에는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요즘 시대에 음악성이 일순위인 아이돌들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나 아예 그런 점이 배제되어 있다면 곤란하다. 패션에 기울인 유니크하며 독창적인 매력을 음악에 아주 조금만이라도 투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명 음악성이 과소평가된 아이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소평가의 피해자가 결코 소녀 시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