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SM엔 적당히 나눠 두부류의 그룹이 존재한다. 한쪽은 음반은 연간차트 톱에 들 정도로 잘 나가지만 음원 성적이 그에 반비례하는 팀과 둘 다 모두 적당히 호조를 보이는 팀. 전자는 대규모의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후자는 세대나 성별을 초월한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 보장됨을 의미한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따라 부르고 즐길 수 있는 ‘히트곡’의 개념이 시디 판매가 아닌 음원 판매량으로 추가 기울어진 시점이기에, SM 내에서 소녀시대의 입지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둘 다 극 강세를 보여 왔다는 것, 굳건한 지지 세력을 구축함과 동시에 일반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소속사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의 유일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임을 증명해왔다.
이러한 틀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The boys’ 때부터였다. 자신들이 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조금씩 그룹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 갔지만, 다행히 테디 라일리(Teddy Riley)로부터 비롯된 음악적 일관성과 뒤를 받쳐주던 ‘Mr. Taxi’, ‘Trick’ 등의 질 좋은 수록곡들이 이를 무마시켰다. 허나 이번엔 좀 다르다. 사실상 ‘I got a boy’는 새로운 시도를 넘어, 가볍게 즐기듯 소녀시대를 소비해 온 라이트 팬들이 진정한 충성세력인지 아니면 잠시 좋아하고 말 이들인지를 떠보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일단 ‘I got a boy’라는 곡은 굉장히 난해하다. 4분 30초 동안 묵직한 비트와 일렉트로니카 소스가 몇 번이고 교차하고, 후렴 A와 후렴 B는 장르변환과 함께 잇달아 등장하며, 멤버들의 캐릭터를 살린 보컬 파트까지 초 단위로 쪼개 삽입해 각각의 개성을 살리려 했다. 이렇게 많은 걸 보여주려다 보니 일관성 상실은 필연적이다. 각 부분의 운용이나 골격이 아무리 좋아도 ‘한 곡’이라는 범위 내에서 받아들이기에는 과부하가 일어난다. 실험과 변화를 떠나 기본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kissing you’나 ‘소원을 말해봐’와 같은 곡으로 팀에 호감을 가져 왔던 이들은 전선을 이탈할 수밖에 없다. 샤이니(SHINee)가 부른 ‘Sherlock’의 경우 그룹 자체가 기존 노선과는 다른 성향의 커리어를 쌓아왔고 이를 쫓아온 팬들이 있었기에 무난하게 그들의 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만, 소녀시대의 시작은 ‘다시 만난 세계’였고 절정은 ‘Gee’였다.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정석을 과도하게 벗어난 곡에 대한 비호감은 거부감으로 이어지며 대중과 팬덤의 골이 깊어지는 요인으로 변모한다. 발매 후 음원이 전작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 시점은 이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대안으로 평가받는 것이 켄지(Kenzie) 작곡의 ‘Express 999’인데, 이쪽도 그다지 탐탁치는 않다. 적당한 수준에서 템포 변환이 이루어지고, 복고와 록의 색채를 잘 버무린 편곡에 ‘급행을 타고’라는 확실한 한방을 탑재했지만, 전반부가 지루하고 후반 4마디에 힘이 과하게 쏠려 있어 ‘킬링 트랙’이라 이름을 붙이기에는 망설이게 된다. 이처럼 러닝 타임 내내 부족하거나, 과하거나가 되풀이된다. ‘Dancing queen’은 나름 준수하지만 어쨌든 더피(Duffy)의 ‘Mercy’와의 비교를 피하기가 어렵고, ‘XYZ’는 반복이 심해 지루하고 건조하게 들린다. 그나마 선방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옛 스타일을 유지하는 ‘Baby maybe’, 좋은 멜로디를 속삭이는 듯한 음색으로 세련되게 풀어낸 ‘낭만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작년 한 해 YG에 밀렸던 이유를 모으고 모아 한 장에 집약한 듯한 앨범이다. 이미 샤이니와 에프엑스(f(x))가 있기에 그녀들에게까지 이런 타이틀 곡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는지, 조금 더 무난하게 갈 수는 없었는지 유감스럽다. 연말 가요 방송만 봐도 알 수 있듯,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눈높이로 펼쳐지는 빅뱅의 무대와, 마치 감탄하라는 듯 완벽히 짜여진 틀 안에서 펼쳐지는 슈퍼주니어의 무대는 열광하는 대상이 같을 수 없는 일이다. 팬덤의 규모를 늘려가며 한류 진입에 성공한 SM이지만, 그 마니악함이 독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이기에 소녀시대만큼은 일반 대중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어야 했다. 지금과 같은 거대 기획사가 되기까지에는 남녀노소가 좋아하던 에이치오티(H.O,T)의 ‘Candy’가 있었고, 에스이에스(S.E.S)의 ‘I'm your girl’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SM은 겸손하지 못하다.
- 수록곡 -
1. I got a boy
2. Dancing queen
3. Baby maybe [추천]
4. 말해봐(Talk that)
5. Promise
6. Express 999
7. 유리아이(Lost in love)
8. Look at me
9. XYZ
10. 낭만길(Romantic St.)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