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꽃' 이후 박효신의 행보는 아마도 '절제'로 향하는 것 같다. 스스로도 “목소리 힘 빼고 부드럽게 진화 했죠”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실제로 음악을 들어봐도 평소 같으면 강하게 치고 올라갈 부분들을 일부러 가성으로 흩어놓는 모습이 잦다. '바보'를 부를 때와 비교하면 거의 나무와 솜의 차이라고 할 만큼 부드러운 구석도 많아졌다. < The Breeze Of Sea >라는 앨범 제목이 암시하듯이, 드세고 강렬했던 박효신의 목소리에 드디어 그윽한 바닷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 같다.
최대한 파워를 절제하고 성숙한 호흡을 내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승철 같은 '자연미'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박효신은 여전히 지독하고 슬프게 노래한다. 소울(Soul)의 영향이 강한 탓에 원래부터 '뜨거운' 목소리를 가진데다가, 주된 편곡 방식과 음반의 구성도 주로 최루의 기운이 가득 찬 스케일 큰 서사가 짙다. 코린 베일리 래(Corinne Bailey Rae), 존 레전드(John Legend) 같은 가수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첫 싱글 '추억은 사랑을 닮아'만 해도 흐느끼는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고, 큰 폭의 스트링과 플루트까지 등장해서 화려하다는 느낌을 준다. '미워하자', 'Don't know why'처럼 단출하고 가벼운 곡도 있지만, '메아리', 'Lost' 같은 감정의 농도가 진한 곡들이 수록곡의 대부분을 채운다.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Interlude'는 물론이고, 음반의 마지막도 나레이션으로 장식되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다들 “힘을 뺐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결코 편안하거나 예민한 모양새는 아닌 셈이다. 목소리는 감췄지만, 음악의 무게감은 고스란히 남았다. 'Breeze'라는 살랑거리는 주제어에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 배경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고독한 장면을 오버랩해야 더 정확한 묘사가 된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노을 분위기의 앨범 커버도 애초에 그런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음을 말해준다.
아마도 그가 흑인의 소울을 하기 때문일 것이고, 여기에 더해 '한국형 소울'을 부르는 가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절제된' 음악을 하면서도 노라 존스(Norah Jones), 조니 미첼(Joni Mitchell), 폴 사이먼(Paul Simon), 밴 모리슨(Van Morrison) 같은 백인 싱어송라이터들처럼 '섬세한' 양상이 아니다. 훨씬 울컥함과 한(恨)에 겨워하는 모습이 짙다. 보다 깔끔하고 명징한 톤을 가다듬어 온 이승철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힘 빼기인 것이다.
'강하고' 슬픈 음악 대신 '아련하게' 슬픈 음악으로 돌아섰다는 것과, 음반 미학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스스로의 음악 세계를 훨씬 심오하게 가져가려는 시도쯤으로 볼 수 있다. 아련하게 안으로 감추는 아픔은 사실 울컥한 뱉어냄보다 좀 더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박효신의 음악이 깊고 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반 좀 안 팔린다고 쇼 프로그램 나갈 궁리만 하는 일부 가수들과 비교하면 훨씬 어른스런 모습이다. 이렇게 '고민'하고, '실험'하는 가수가 있어야 음악계 사정도 나아질 것이다. 박효신의 힘 내려놓기와 음반 미학에의 모험이 가요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소몰이'엔 지쳤고, 음반이 사라지는 상황은 너무나 안타깝다.
-수록곡-
1. The breeze of the sea (Feat. 김보라) ( 작사 : / 작곡 : 박인영 )
2. 추억은 사랑을 닮아 ( 박효신+김태윤 / 박효신+황성제 )
3. 메아리 ( 김태희 / Ryoki Matsumoto )
4. Etude (Feat. 진보라) ( / 진보라 )
5. Lost ( 박효신+윤사라+김태윤 / 박효신+황성제 )
6. 다시 사랑했으면(Interlude) ( / 황성제 )
7. 미워하자 ( 전해성 / 전해성 )
8. 그립고... 그리운... ( 린 / 박효신+황성제 )
9. Like a star (Feat. 최아롬(버블 시스터스)) ( 박효신+최갑원 / 박효신+황성제 )
10. Now & forever ( / 황성제 )
11. 사랑을 비우다 ( 린 / 이현정 )
12. Wind child (Interlude)
13. 1991年, 찬바람이 불던 밤.. ( 박효신+최갑원 / 박효신 )
14. The lullaby (Feat. 진보라) ( / 진보라 )
15. Don't know why (Live version)
16. My love ( Kubota Toshinobu / Kubota Toshinobu )
17. Turn the page (Outro)
Producer : 황성제+박효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