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비(윤도현 밴드) 인터뷰
윤도현밴드(YB)
가수들이 신보를 내면서 매체 홍보를 위해 만드는 '보도자료'는 홍보라는 목적에 맞춰 대부분 좋은 말, 자화자찬 일색이다.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윤도현밴드의 새 이름인 와이비(yb)의 신보이자 그들의 통산 7집이 되는 < Why Be? >의 보도자료는 어조와 내용이 조금은 충격적이다. 자신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절절한 고백'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신곡 CD 외에 이전 발표한 곡들을 영어로 리메이크한 CD가 한 장 더 들어있는 것에 대한 해설 대목부터 다르다. '그 이유는 이전 음악들에 대한 애정과 반성이다. 어느새 10년의 활동기간을 거치면서 때로는 트렌드를 따랐고, 때로는 흉내를 내기도 했고, 또 때로는 부족한 스스로를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번거롭고 돈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새로운 시작은 지난 것들을 반성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합정동 소재의 사무실에서 와이비의 네 멤버, 윤도현 허준(기타), 박태희(베이스), 김진원(드럼)을 만났을 때 무엇보다 먼저 보도자료의 글은 누가 쓴 것인가 물었다. 그룹의 간판인 윤도현이 손을 들어 “내가 직접 썼다.”고 했다. “내 심정 아니 우리 심정을 가감 없이 밝히고 싶었습니다.” 자료는 나아가 윤도현밴드의 슈퍼스타덤을 둘러싼 외부의 거친 비난도 숨김없이 공개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월드컵밴드라고 부르고, 운동권밴드라고 부르고, 시류에 영합해 인기를 구가한다며 비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와이비는 그동안 수많은 편견 속에서 말 못할 맘고생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2002년 이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크고 작은 일에 휩쓸려, 오도 가도 못할 길로 몰리기도 했다...'

톤이 강하다.
윤도현: 굉장히 의도적으로 쓴 거죠. 외부의 비난 중에는 꼬투리를 잡는 것도 상당수 있었지만 솔직히 스스로 (우리) 안에서는 창피한 것도 있었어요. 그것들을 낱낱이 밝히면서 다시는 그렇게 안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도 이런 보도자료는 처음 봤다.
윤도현: 일부러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밴드로서 프라이드는 없지 않았지만 그간의 과정을 보면 너무 갈팡질팡했던 것은 사실이고 거기에 제가 선두에 서있었죠. 저부터 반성해야 했고, 그래서 '다시는 반성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어요.
이번 앨범은 분명 지난 2003년의 '잊을께'가 수록된 6집 앨범(< [YB] Stream >)과도 다르고 지난해 윤도현 개인으로 낸 곡 '사랑했나봐'와도 분리선이 뚜렷하다. 록 앨범인 것은 전작과 같지만 다소 일방적으로 몰아쳤던 6집과는 달리 이런저런 시도들이 가해져 한층 밀도가 높아졌다.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그대로 '록의 외형보다는 내면으로 파고들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말은 무조건 질러대는 것이 록의 능사가 아니라, 록의 정신에 소홀하지만 않는다면 이런저런 방법론, 세밀한 접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와 통한다. 신보는 밴드사운드 즉 와이비의 느낌을 분명히 지키면서도 높낮이, 템포, 색조 등에서 변화를 부렸다는 점에서 정체성과 관련해 하나의 진전이라고 할 앨범이다.
지난번하고 무엇이 다른 건가.
윤도현: 지난 6집 앨범은 저 때문에 망했죠. 월드컵 이후에 결코 월드컵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공언하기 위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했어요. 음악은 강할 수밖에 없었죠. 혼란을 겪은 거고 이전과 많이 바뀌면서 상당히 힘들었던 게 사실이죠. 힘이 들어가서 힘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결과 '잊을께'만 보더라도 대중적인 코드임이 명백했지만 대신 '우리적인 밴드음악'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런 곡을 만들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잊을'는 밴드가 만든 곡이 아니라 인기작곡가 윤일상의 작품이라는 때문에 가시 돋친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7집에 윤도현이 작사 작곡을 한 곡이 절반을 넘는 것을 비롯해 와이비가 전곡을 모두 만들었다는 점은 어떻게 밴드가 남의 곡을 받느냐는 외부 시선에 대한 대응과 반작용으로 보인다.
박태희(베이스):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찾으려고 한 시도 가운데 하나죠. 그렇기 때문에도 신보는 마치 1집 앨범 같기도 합니다.
기타 앨범이라고 할 만큼 신보는 기타리스트 허준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히 '천국으로 가는 버스'와 '선인장'과 같은 곡은 그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다.
허준(기타): 제 스타일의 20% 정도는 잡은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잘 치려고 해서 힘이 들어갔어요. 지금은 편안하게 '막' 처요. 이게 더 록스러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옆에서 박태희는 허준이 편곡을 하는데 자기주장도 많아졌고 자기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충 설명을 했고 윤도현은 웃으며 허준이 영국에서 공연한 뒤 달라져 빈티지 악기를 구입하는 등 실질적인 투자를 했다고 거들었다.)
밴드의 앨범이 안정된 느낌을 준다는 것은 연주하모니가 절대적인 것임을 감안하면 기타 베이스 드럼의 연주와 보컬이 화학적으로 만나고 있음을 가리킨다. 신보 < Why Be? >는 윤도현이라는 리더의 카리스마에 묻힌 기타와 베이스 드럼 파트가 제각기 솟아나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는 전리품도 챙겼다. 멤버들이 일제히 이번에 허준이 가장 헌신적이고 가장 발전한 인물이라고 한 것이 말해준다. 밴드에도 충실하고 자기 자리도 갖게 된 것이다. 드럼 김진원은 이를 협업에도 충실하고 '분업'도 성공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베이스는 이번 신보에서 어땠나.
박태희: 사실 그동안 음악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몇 곡 정도는 스스로 베이스 라인을 잡았어요. 솔직히 전에는 도현이의 의중을 많이 반영했거든요.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 거죠. '빨간 숲 속'이나 '덤벼'의 경우는 이렇게 하자고 과감하게 내 것을 주장하면서 기타 편곡에 임했습니다.
드럼도 전에는 뭉툭한 맛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톤을 잘 풀어낸 것 같다.
김진원(드럼): 지난해 유럽 공연을 하면서 드럼 터치를 바꿨어요. 그 사이에 개인 레슨을 받았죠. 대거(킥 드럼)의 경우 보통은 22인치나 24인치를 쓰는데 이번에 28인치를 썼습니다. 28인치 짜리가 볼륨 자체도 크고 음역도 넓지만 어쿠스틱한 느낌이 강하다는 강점을 살린 거죠. 개인적으로도 잘 맞았습니다. 신보는 저의 드럼 터치와 톤이라는 면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달라요.
악기만이 아니라 접근의 컨셉 자체가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김진원: 드럼의 테크닉이 아니라 에너지를 내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본기와 소리를 다르게 내는 방법을 생각하고 접근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신보에서도 곡에 더 어울리는, 더 맞는 편곡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타이틀곡을 발라드가 아닌 '오늘은'으로 간 것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음악계를 보면 록 밴드의 앨범도 타이틀곡은 발라드 성향의 곡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윤도현: 사실 우리의 히트곡은 전부 발라드들이죠. (웃으며) 지금의 발라드만으로도 공연 하나를 다 할 수도 있습니다. 발라드는 이제는 정말 지겨워요. 누가 봐도 록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을 히트시켜야죠. 조용한 템포의 곡을 타이틀로는 하지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무조건 강렬한 록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충분히 호흡할 수 있는 성질의 록이죠. 이번에 '오늘은'을 쓰면서 '내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중적인 곡을 써보자'는 작정을 했어요. 이전에는 대중적으로 곡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거든요. 발라드가 아닌 선에서 록이면서 대중적인 느낌의 곡이라고 할까요. 그 점에서 '오늘은'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감은 잡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의 반응은 어떤가.
윤도현: 지난 '사랑했나봐'는 내자마자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마치 보아가 그때 앨범을 냈는데, '도현 오빠 때문에 1위를 못했다'는 말도 들었죠. 그런데 '오늘은'은 록 성향의 곡이라 그런지 반응이 느리고 서서히 와요. 신보 낸 지 두 달 정도 되니까 사람들이 알고 좋아하더군요.
가사는 '덤벼'의 경우처럼 와이비적인 지향을 살리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윤도현: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가사도 의도적인 것은 배제했습니다. 6집에서 인위적으로 썼던, 일부러 썼던 노랫말이 이번에는 없습니다. 그냥 우리 스스로를 보고, 보여줄 수 있는 언어들로 풀어갔습니다. '내추럴'하게 간 거죠.
모든 점을 고려해서 새로 태어난 와이비의 접근법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구현한 신보의 곡을 든다면.
윤도현: 블루스적인 터치의 '천국으로 가는 버스'를 들 수 있고, 사운드와 가사에 있어서 '덤벼'가 우리 색깔과 잘 맞는 것 같다.
박태희: 공연에서는 앨범에서 가장 강한 '빨간 숲 속'의 반응이 좋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랑 어울리는 스타일이죠.
허준: 태희형이 쓴 '나는 나비'도 괜찮아요.
뮤지션은 앨범을 마치고 나면 아쉬움도 남기 마련이다. 어떤 점이 걸리던가. 아울러 다음은 어떻게 했으면 한다는 생각도 했을 텐데 그 얘기를 듣고 싶다.
박태희: 솔직히 만들어놓고 스스로 만족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뭘 하고 싶은지 아는 앨범이라는 점에서죠. 하지만 편곡, 그 자체의 테크닉은 여전히 미흡하죠. 좀더 자유롭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앞으로 더 발전할 겁니다. (윤도현) 다음부터는 다양하게 보다는 '좁으면서 깊게' 갈 겁니다. 교양선택이 아닌 전공필수로 가야죠. 감은 잡았으니 심화(深化)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윤도현의 개인 앨범이 나오고 게다가 '사랑했나봐'가 빅 히트하면서 윤도현밴드는 어떻게 되는 건가, 행여 해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 멤버의 입장이 묘했을 것 같다.
김준원: 솔직히 윤도현밴드로 만들어낸 콘텐츠는 제한이 되어있죠. 전국 투어를 했고 라이브는 할 만큼 했습니다. 그 때 밴드 앨범을 낼 시기도, 준비도 되지 않았어요. 회사(다음기획)가 그런 상황에서 윤도현 혼자의 개념을 살려보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3년 전이었다면 큰 싸움이 났을지도 모르죠. 훗날이 분명했기 때문에, 곧 다시 밴드로 간다고 믿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앨범의 프로듀서인 김신일씨는 누군가.
박태희: 여러 가수들의 프로듀서를 맡은 재야의 젊은 실력자죠. 이번에 밴드의 교류와 역학이라는 점에서 많이 기여했습니다. 젊음의 감각이 필요한 우리와 시각이 일치했어요. 하지만 록 음악을 했던 친구가 아니라서 흡족한 상태의 완성도에 도달했다고는 하기 어렵죠.
윤도현은 이 지점에서 “우리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사운드의 정체성과 퀄리티를 잡아줄 프로듀서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후배들 가운데에서도 정말 잘하는 사람도 있고 검증된 외국인 프로듀서도 있지만 아직 운명의 연(椽)을 맺을 주인공을 찾지 못했어요.”
와이비는 11월16일과 17일 이틀간 미국 뉴욕의 유명한 '비비 킹 클럽'에서 많은 레코드 A&R 관계자들 앞에서 한 미국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진출을 타진하는 절호의 기회. 윤도현도 아주 중요한 공연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음반계약을 체결해서 미국에서 음반 내고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이 기회에 우리 음악을 효과적으로 발전적으로 만들어줄 프로듀서를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신보를 만들기 전 경청했던 앨범은 어떤 것들인가.
윤도현: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 제트(Jet),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콜드플레이(Coldplay) 음반을 들었죠. 이들한테 느낀 것은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한번 가기로 하면 완전히 가는 것,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것, 뭐랄까, 그 에너지죠. 이걸 습득하고 싶었죠. 제가 무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거인 것 같습니다.
윤도현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싶다. 수록곡 '덤벼'가 제 심정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와이비가 태어난 지 이제 겨우 100일이에요. 애기가 태어나면 예쁜 것을 보듯이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앨범입니다.”라며 팬들의 애정을 구하기도 했다. 팬들의 도움이 '돌진'에 필요한 또 하나 필수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강한 부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