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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Easy 0.5
버벌진트(Verbal Jint)
2010

by 홍혁의

2011.01.01

국내에 조성된 힙합 공론장에서 '대중성 추구'라는 단어는 십중팔구 참을 수 없는 비난 욕구를 상승케 만든다. 믿었던 롤 모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점잖게는 '실망'이라는 단어로 유감을 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돈에 맛 들린', '변절자' 등의 험악한 야유를 퍼붓기도 한다. 근래 들어 지상파 음악 방송에 적어도 두세 차례 출연한 경험이 있는 힙합 팀 중에서 심판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은 이가 없으리라.

그러던 차. 일명 '킹 오브 플로우', '무관의 제왕' 등의 수식어로 점철된 버벌진트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달달한 러브 송을 들고 나왔다. 스타일의 변화는 흡사, 타협을 거부하는 독불장군이 추종자들이 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는 모종의 여인과 소꿉장난을 하는 이중생활을 연상케 한다. 그간 작업물을 내놓을 때마다 그림자마냥 논란이 수반되었듯이, 이번에도 호사가들에게 군침 도는 미끼를 투하한 셈이다.

그렇다고 안면몰수하고 신나는 뽕짝 댄스비트를 시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 청취자들도 포섭할 수 있는 안락한 사운드로 도색을 했을 뿐이다. '약속해 약속해'에서는 지나(G.NA)를, '기름 같은걸 끼얹나'에서는 뎁(deb)을 초대하였다. 전형적인 차도남의 목소리를 지닌 버벌진트와 귀여운 여성 보컬의 랑데부가 20대 안팎의 여심을 충분히 흔들 수 있지 않겠는가. 케이블 방송을 통해 헐리우드 잇 걸들의 패션을 시크하게 읊어주던 남자가 랩으로 귀를 간질여주니 마음이 동할 만도 하다.

힙합 곡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려도 인상을 찌푸리는 마초 힙합 팬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겠지만, 버벌진트가 힙합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말장난의 묘미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소 희석되었고, 이전의 총기(聰氣)만큼은 아니지만 주어진 리듬 속에서도 능글맞게 고유의 플로우를 구사한다. 도도하고 깐깐한 서울라이트(Seoulite)의 형상도 그대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행보하나하나에 힙합 팬들의 시선이 쏠린다는 점이다. 현재로는 지상파와 언더그라운드 양자 사이에서 애매하게 걸쳐있으면서 영리하게 상황을 관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부러움, 시기심 등이 뒤섞인 복잡한 심사를 그를 향해 집중적으로 표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울한 대목이라면 현재 국내 힙합 신에서 그 정도의 관심을 유발하는 인물도 흔치 않다는 점이다.

-수록곡-
1. 약속해 약속해 (feat. G.NA)
2. 기름 같은걸 끼얹나 (feat. deb & Beenzino) [추천]
3. 우아한 년 (feat. 상추 of Mighty Mouth)
4. 약속해 약속해 (Instrumental)
5. 기름 같은걸 끼얹나 (Instrumental)
6. 우아한 년 (Instrumental)
7. 크리스마스를 부탁해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