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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Easy
버벌진트(Verbal Jint)
2011

by 홍혁의

2011.09.01

이 앨범의 고무적인 성과는 여성 지지자들을 끌어 모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울대라는 학벌, 못지않은 외모, 성우까지 섭렵한 매끄러운 목소리 등이 핵심이 아니다. 검정치마의 조휴일까지 끌어들인 모던 록 성향의 '좋아보여'가 통했기 때문이다. 각종 음원차트는 물론이고 빌보드 케이팝 차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저력을 발휘한 것은 힙합 마니아를 뛰어넘는 환영을 받았다는 증거다. 음악 공개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는 것보다 라디오를 위주로 활동한 까닭에 바닥으로부터 음악 팬들에게 합격점을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랩 게임에 뛰어든 시간도 10년이 넘어가지만 그의 주가는 이제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물론 힙합계에서는 '킹 오브 플로우'로 군림하지 오래됐지만, 광범위한 흥행을 거둬들인 것은 근래에 들어서다. 힙합계의 맏형인 라이머(Rhymer)가 이끄는 브랜뉴 사단(Brand New)에 편입하면서 문체뿐만 아니라 메시지도 변화를 꾀했다. 이번 앨범의 트레일러 성격이었던 < Go Easy 0.5 >에서 지나, 뎁(deb) 같은 여성 아티스트와 달콤한 러브 송을 부를 때부터 예고했던 바다.

부족했던 나머지 0.5의 퍼즐이 맞춰진 모양새다. 크게 보면 매스티지(Masstige) 전략이다. 유려한 랩 스킬을 타 장르간의 교배를 통해 대중화된 음악문법으로 처리한 것이다. 모던 록, 레게, 펑크(Funk), 소울 등 각양각색의 샐러드가 섞여있지만 그 모두를 담는 그릇은 힙합이다. 힙합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스웨거 논쟁이다, 라임 논쟁이다 결코 부패되지 않을 떡밥 논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티스트 본인은 전혀 색다른 음악을 묵묵히 준비한 셈이다.

뇌리에 남는 것은 역시 기타 사운드다. 지코(Zico)와 쿤타(Koonta)가 각각 휘몰아치는 '원숭이띠 미혼남'과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의 클라이맥스 대목은 모두 긴박한 드럼비트와 기타 스트로크과 함께 맞물린 드라이브가 걸려있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기타를 즐겨 잡아 밴드까지 꾸렸던 전력이 긍정적으로 발현됐다.

다소 신선한 감흥을 준다고 보기 힘든 'My Audi', 'Want you back' 등의 곡이 다른 프로듀서의 소관이라는 점은 그의 프로듀싱이 앨범 내에서도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음을 반증한다. < Go Easy 0.5 >에 수록되었던 '약속해 약속해'와 '우아한 년'은 피처링진을 교체하며 곡이 한층 풍성해졌다.

리쌍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이제 힙합에서는 '피쳐링진의 양'보다 '피쳐링진의 질'이 중요하게 되었다. 단순히 세를 과시하는 친목회 성격의 피쳐링 군단이나, 특색 없는 여성 싱어에게 후렴구를 맡기는 공식은 식상해졌다. 그런 점에서 검정치마, 어반 자카파, 레이디 제인(Lady Jane) 등에서 나타나듯이 인디 뮤지션과 힙합의 지속적인 제휴관계는 버벌 진트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자아내며 신 전체의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또 그것이 수용자의 파이를 넓혀보려는 국내 힙합 나름의 타개책일 것이다.

-수록곡-
1. 원숭이띠 미혼남 (feat. ZICO of Block.B) [추천]
2. 좋아보여 (feat. 검정치마) [추천]
3.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feat. Koonta) [추천]
4. 우아한 년 2012 (feat. San-E & Okasian)
5. 긍정의 힘
6. Want you back (feat. NODO)
7. Luv songz (feat. 태완 a.k.a. C-LUV)
8. 약속해 약속해 2012 (feat. 조현아 of 어반 자카파) [추천]
9. 어베일러블 (feat. Lady Jane)
10. 깨알같아
11. My Audi (feat. The Quiett)
12. 우리존재 화이팅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