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과의 인터뷰
박효신

그처럼 스케줄에 치게 되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어진 IZM과의 인터뷰에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주변 분들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라며 공손히 인사를 건넨 그는 음악얘기를 즐겼으며 그 때문인지 말미에도 스케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딴 스타들처럼 '바빠서 이제 그만'이란 상투를 대지 않았다. 주위 소문대로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사진이나 TV에서보다는 인상이 진하고 강렬해 보였다. 그가 여대생과 젊은 주부들로부터 압도적 인기를 누리는 데는 외모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목소리였다. 음반에 담긴 음색처럼 그는 실제로도 '웅얼거리는' 톤으로 말했다. 그의 노래가 결코 목소리를 작위적으로 꾸민 결과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대중가수'라는 점을 못 박고 얘기를 시작했다.
이번 앨범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지.
대중가수로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구현하진 못했어요. 그것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겠지요. 천천히 욕심을 내겠습니다. 템포조절을 해야죠.
신보제목이 '소울 트리'인데.
제가 좋아하는 건 흑인음악이에요. 그것도 소울(Soul)이 가장 좋아요. 아레사 프랭클린의 고전이든 근래의 어번 소울이든 다 끌려요.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음반에서는 장르구분을 하지는 않아요. 귀로 좋은 것은 다 좋지요. 주변에서는 더러 록을 해보라고 권하지만 지금 당장은 소울이에요.
타이틀곡 '그곳에 서서'는 이전 '좋은 사람'과 달리 울어대는 이른바 '소몰이 창법'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어때요, 주변에서 싫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좋은 사람'의 창법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었는데 '화려한 게 없어져서' 아쉽다는 얘기도 있어요. 박효신답지 않다는 거겠죠. 이번 음반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안정감' 있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거칠고 우는 식으로 노래하는 것을 절제해야 했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제 스타일을 너무 없애면 조금 불안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는 거죠. 변화란 모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그곳에 서서'는 재홍이 형 솜씨가 드러난 곡이죠. 간결하고 쉽고 트렌디하기도 하구요. 재홍이형은 승부를 걸 만한 귀에 쉽게 잘 들리는 선율을 써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저를 잘 알기 때문에 그 곡에 '남성적 안정감'을 잘 부여했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보다는 '그 곳에 서서'가 울지 않아서 좋거든요. 그 점에서 박효신이 작곡한 'Hey U come on'은 여전히 울어서 귀에 걸렸습니다.
복고풍 소울을 하려는 마음에 쓴 곡인데... 그런 작곡자가 별로 없잖아요. 원래 영어로 가이드 보컬을 했을 때는 정말 맘에 들었어요. (신)재홍이 형도 흡족해 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말로 하니까 맛이 깎여버렸어요. 우리말이 좀 각지잖아요. 앞으로 그런 스타일을 계속 연구할 생각이긴 하지만 '무조건 음악이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첫 곡으로 김도훈이 쓴 '나처럼'은 어때요. 타이틀성 곡이라고 봤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맘에 드는 곡입니다. 편집할 때 꼭 1번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죠. 편안하면서도, 저의 거칠고 우는 게 없는 곡이죠.
김광진이 쓴 '몰랐죠'는 '마법의 성'의 잔영이 있지만 수록곡 가운데 돋보이던데.
이번 앨범은 아까 말씀대로 안정감과 함께 곡마다 개성을 살리고자 했던 것도 있거든요. '몰랐죠'가 그런 곡입니다. 광진이 형과 처음부터 의견을 나누면서 만들었어요. 아름다운 멜로디죠. 개성적 편곡이 발휘된 대곡이라고 생각해요.
김범수와 '친구라는 건'을 듀엣으로 부르게 된 계기는?
범수 형의 신보에도 저와 같이 부른 '무제'라는 곡이 있죠. 범수 형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형이구요. 그것도 그렇지만 전부터 남성 듀엣 곡을 해보고 싶었어요. 남성들의 듀엣이 멋있잖아요. 권인하선배와 '그것만이 내 세상'을 해본 이후 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늘 제임스 인그램과 마이클 맥도날드가 부른 83년 곡 'Yah mo B there'처럼 해보고 싶었죠.(참고로 김범수는 79년생, 박효신은 81년생이다)
신보를 낸 시점도 비슷해 김범수와 경쟁하는 처지입니다. 그의 노래를 솔직히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마디로 완벽에 가까운 보컬이죠. 제가 너무 좋아해서 범수 형 전국순회공연에 게스트로 따라 다녔어요. 비트감이 정말 대단해요. 밀고 당기는 것도 잘하구요, 비브라토 속도감 그리고 노래에 임팩트(impact) 넣는 것 다 좋아요. 전 범수 형에 비해 비트감이 떨어지죠.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이기도 하구요.
그럼 박효신의 보컬은 어디에 강점이 있는 거죠?
톤이 유니크(unique)하다고 봐요. 그 점은 제가 범수 형보다 낫지 않나요? 제 장점이라면 음울하고 우는 듯한 음색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통째로 버릴 순 없죠.
지금까지 이전에 낸 3장의 앨범을 자평한다면.
1집은 맘에 들어요. 추억도 많구요. 2집은 소속사에 전속되어 발표한 앨범인데, '동경'을 비롯해 곡은 좋지만 한마디로 작곡가의 작품이죠. 박효신음악은 아니에요. 작업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전 감히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습니다. 강압적인 게 많았죠. 전 흑인음악에 빠져있는데, 제작자는 보편적인 가요를 요구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3집은 신재홍프로듀서 체제가 확립된 앨범이죠. 조금 더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어요.
프로듀서 신재홍씨와의 관계를 말한다면.
나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형이죠. 편안한 사이에요. 생일 때 가족들과 같이 식사도 합니다. 음반 작업할 때 참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함께 음악을 고민하지요.
이전 소속사에서 음악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뭔가요?
음악은 시간이나 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갖춰졌을 때, 부르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바꾼 가수와 곡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구요. 그분이 노래한 'Hello'입니다. 소속사 문제가 원만하지 않던 때 들었는데, 절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어요. 이 노래 때문에 다음날부터 열심히 노래연습 했으니까요. 처음 들었을 때는 멍하고 답답하고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구요. 제 삶에서 처음으로 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곡이죠. 지금도 소원은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루더 밴드로스에게 보내는 것이구요, 목표는 그를 능가하는 가수가 되는 것입니다.(참고로 'Hello'는 루더 밴드로스의 94년 앨범 <Songs>에 실려 있는 곡이다)
왜 여대생들한테 인기가 있는가를 물었더니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음악 외에 약간은 어벙한 듯 순수한 인상이 어필하는 것 같다고 부연 설명하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중학교 딸을 가진 어머니 팬들이 많아서 요즘 놀라고 있다”는 말로 그 얘기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요즘 어머니들이 겪는 생활고는 이루 말할 수 없잖아요. 저도 행복하게 자라오지는 않은 편이라 그 고통을 알아요. 어머니들이 제게 편지 쓴 내용은 '그나마 박효신의 노래로 위로를 받는다'는 거예요. 한 어머니 편지를 읽고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제 노래로 그 분들의 빈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습니다.”
박효신은 2003년에 경희대 포스트모던학과 입학해, 현재 2학년 재학중이다. 그는 대학에 대해서는 음악 하는 입장에서 꼭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갈 길이 음악이니까 음악공부'의 개념으로 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 계속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미숙하지만 오래전부터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기쁩니다. 오늘 음악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눠서 기분이 좋아요. 해주신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천천히 길을 밟아나가면서 좋은 대중가수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지금은 조금씩 알려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