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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érgo
엔믹스(NMIXX)
2023

by 장준환

2023.04.01

여러 음악을 다채롭게 섞은 ‘믹스팝’을 과감히 선보이며 변혁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엔믹스는 유례없을 혼란을 겪고 있다. 저조한 반응이 거듭되자 견고했던 확신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미니 1집 < Expérgo >의 입장 표명은 높은 접근성과 안전 지향이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보편과 타협하여 정체성의 농도를 대폭 줄인 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재고하는 단계인 셈이다.


정의 규정부터 시급했던 < Ad Mare >의 ‘O.O’는 시기상조의 결과물이었다. 첫인상이 워낙 깊게 자리 잡은 탓일까, 시원시원한 성량과 다양한 악기 소스를 저글링 하듯 가지고 놀며 역동적인 변주를 선보인 ‘Dice’는 우수한 퀄리티에도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일반적인 악곡에 프랑스 고전 동요 선율만을 소극적으로 각인한 ‘Young, dumb, stupid’의 등장 배경이 여기에 있다. 설명란에는 믹스팝의 연장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구조 자체를 과감하게 뒤흔들던 과거 모토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다.


모호한 포지셔닝은 결국 충돌을 빚는다. 대중적 노선은 취해야 하지만 동시에 ‘믹스팝’이라는 난해한 과제는 일부 수행해야 하기에, 일부러 순탄한 전개를 배치한 뒤 하이라이트 구간만 분위기를 급격히 바꿔 당위를 부여하려는 기조가 반복된다. 타이틀 ‘Love me like this’가 대표적이다. 긴박한 클랩 사운드 아래 전투적인 분위기를 부드럽게 덧입힌 초반 연출과 달리, 갑작스런 후렴구의 낙하 이후에는 구절을 단순 반복하는 무의미한 도돌이 곡으로 바뀌고 만다. 섣부른 저음 난입으로 불협화음을 형성하는 ‘Just did it’의 경우도 비슷하다.


조금은 게으른 전략처럼 다가온다. 곡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순도 높은 고양감을 창출하고, 콘셉트가 뚜렷해 급격한 변주에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던 ‘Dice’의 사례가 있어 그 대비감은 더 크다. 결국 캐릭터성과는 별개로 보편적으로 듣기 좋은, 유려한 기승전결 아래 용수철처럼 마구 튀어 오르는 ‘Paxxword’와 멤버들의 음색이 파트별로 잘 드러나는 쉽고 편안한 팬송 ‘My gosh’에 손길이 가게 된다.


나름의 변화구를 던졌지만 < Expérgo >는 이전만큼 차별점을 제시하지도, 그렇다고 통쾌한 자구책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두 번의 맛보기와 피드백은 분명 스스로 돌아볼 지점을 던졌다. 다만 걸어온 행보를 부정하기보다는 엔믹스만의 특장점을 고려한 거시적 통찰과 고민을 통해 전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야망가가 겪는 방황의 궤적은 길고 고통스럽지만, 먼 훗날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화폭이 되기 마련이다.


-수록곡-

1. Young, dumb, stupid

2. Love me like this

3. Paxxword [추천]

4. Just did it

5. My gosh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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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trackcam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