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틀어진 타륜을 제대로 맞추기란 험난한 법이다. ‘믹스팝’이라는 표어로 K팝의 맥시멀리즘 성향을 극대화한 ‘O.O’와 ‘Dice’가 맞이한 풍랑에 엔믹스는 경로를 재설정했으나 이는 정작 그룹의 정체성을 퇴색시키며 좌초될 위기로 이끌 뿐이었다. 원더걸스의 ‘Like this’와 트와이스의 ‘Signal’을 8:2 정도로 섞은 ‘Love me like this’는 팀 이름을 무색하게 했고, 산만한 랩으로 JYP 걸그룹의 단점만을 강조한 ‘Party O’Clock’은 개성과 대중성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했다.
확실한 분기점이 되어야 하는 출항 3년 차에서 < Fe3O4: Break >는 뜻밖의 호재를 알린다. 뚝심과 음악적 완성도 사이 수평을 맞춘 것이다. 여태까지 발표한 음악 중 가장 돋보이는 선공개 싱글 ‘Soñar (breaker)’는 'Change up!' 구호를 되살려 믹스팝의 부활을 알리나, 장르 혼용 위주의 치고 빠지기식 전개와 난무하던 고음의 전략적 배치를 통해 쾌감을 살리고 멀미는 없앴다. 곡 자체는 깔끔했으나 과도한 보컬 퍼포먼스의 강조로 흐트러졌던 ‘Roller coaster’의 좋은 안티테제다.
취할 것만 취하겠다는 다짐은 타이틀곡 ‘Dash’도 동일하다. 대부분을 훅으로 처리한 구조는 ‘Love me like this’를 닮았지만 펑크(funk) 기반 올드스쿨 힙합 퍼커션을 부각해 과하게 악센트를 준 랩과의 마찰점을 줄였고, 팝 펑크(punk) 스타일로 짧게 삽입한 브릿지는 믹스팝 간판을 붙일 구실과 개연성을 함께 마련했다. 기량을 뽐내기 위해 지르기만 하던 목소리를 정돈하고 화음 위주로 개편함에 따라 절찬리 유행 중인 Y2K 및 스트리트 댄스 문화와도 너끈하게 연결된다.
‘엔믹스다움’으로 전진한 만큼 정체는 무차별한 적재에서 벌어진다. ‘Run for roses’는 2023년 미국 시장을 뒤흔든 컨트리를 따왔으나 답답한 선율이 사운드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며, 단순한 영어 표현의 중첩에 영케이(Young K)의 가사 또한 묻혀버린다. 곡 말미에 황급히 드럼 앤 베이스를 접붙인 ‘Boom’, 기본 비트부터 랩 딕션까지 ‘Boy’s a liar, Pt. 2’를 본뜬 ‘Passionfruit’도 과적 문제는 마찬가지.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달려가는 1980년대 신스 웨이브 트랙 ‘Break the wall’이 끝자락에서 상황을 일부 타개하나 ‘Paxxword’ 급의 통통 튀는 맛은 부족하다. 파도와 거센 바람에 굴하지 않는 자만이 개척자가 된다.
양극단을 모두 지나온 끝에 엔믹스가 얻어낸 자철석은 단기적 진행 노선을 제시하진 못해도 밝게 빛나는 북극점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었다. 지워내야 할 질문은 여전히 많고 다수가 동의하는 답도 아직은 아니지만, 뿌연 안개에 가려 있던 스스로의 목표지점을 다시 확인한 그들은 비로소 추진력을 얻었다. “Hey you bastards, I’m still here! (야 이놈 자식들아, 나 아직 살아있다!)” 스스로를 벽에 가뒀던 빠삐용의 호기로운 탈출 선언이자 생존 신고다
-수록곡-
1. Dash [추천]
2. Soñar (Breaker) [추천]
3. Run for roses
4. Boom
5. Passionfruit
6. XOXO
7. Break the wall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