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문제의식에 도달한 것일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의 유례 없는 동반 상승으로 걸그룹 간 어깨싸움에서 밀려난 에스파(aespa)가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차가운 기계 무장을 벗어던진다. ‘Savage’, ‘도깨비불’, ‘Girls’에서의 과격함은 내려놓고 그 자리를 보편적인 낭만과 신비로 대체하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자 대중을 향한 저돌적인 접근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 아케인 (Arcane) >의 삽입곡 ‘Playground’가 연상되는 만화적 분위기에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한 점층적 구성과 자연음의 증대는 현실로의 침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전후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연결한다. 전자음이 내어준 자리만큼 존재감을 끌어올린 멤버들의 보컬 역시 더욱 위력적인 모습이다. 사운드의 파괴력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특장점을 잃지 않으며 거둔 결과이기에 더욱 고무적이다. 잠시 내려놓은 기대를 다시 걸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와 상징성을 두루 갖춘 쾌조의 새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