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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plash
에스파(aespa)
2024

by 박승민

2024.12.29

연이은 성공 이후 내놓는 후속작에는 기대와 부담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주인공이 ‘Supernova’와 ‘Armageddon’으로 2024년을 지배했던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전과 안정 사이의 기로에서 에스파는 기존의 문법을 견지한 채 요철을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 < Whiplash > 속에는 보다 늘어난 철분 함량과 함께 어느새 이들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짜릿한 금속성 풍미가 가득하다.


앞선 두 히트곡이 3분 내외 러닝타임 안에 최대한의 장치를 집어넣으며 구성상 맥시멀리즘을 꾀했다면 ‘Whiplash’는 상대적으로 정제된 접근을 보여준다. 테크노와 하우스를 간결히 융화시킨 비결은 바로 리듬에 있다. 기초가 되는 4/4 박자를 넓게 깔아둔 다음 파트에 맞추어 신시사이저 멜로디와 베이스 텍스처를 번갈아 강조하는 방식으로 두 요소를 매끈히 접합해 냈다. 상승세를 놓치지 않고 깔끔한 뒷맛을 남기는 시작이다.


K팝이 점차 전자 음악의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차용하는 상황, 에스파의 강점은 데뷔 이래 축적해 온 꾸준한 탐구에서 나온다. 쾌조의 출발 뒤 페이스를 이어가는 ‘Kill it’ 역시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이다. 베이스 뮤직을 프로듀싱해온 한국의 DJ 임레이가 주조한 트랩 비트는 ‘Savage’와 궤를 같이하며 펼쳐냈던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아우른다.


다만 오프닝의 강렬함에 따뜻한 멜로디를 덧씌워 평형을 만든 ‘Flights, not feelings’를 제외한 나머지는 초반의 기세를 따라잡지 못했다. 전작의 ‘Set the tone’, ‘Live my life’를 같은 결의 ‘Pink hoodie’, ‘Just another girl’과 나란히 두었을 때 그 간극은 뚜렷해진다. < Armageddon > 발매 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의 복귀기에, 타이틀에 버금가게 뛰어났던 과거 수록곡들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하다.


그룹의 연속성 유지와 정체성 확립 면에 의의를 둔 작품이다. 근래 불어닥친 일렉트로닉 기류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노선을 고수한 결과 유행의 변화는 순풍이 되어 추진력을 더했다. 킥은 부재할지언정 메인 메뉴에 셰프의 색깔이 가득하기에 만족스러운 한 상이 나왔다.


-수록곡-  

1. Whiplash [추천]

2. Kill it [추천]

3. Flights, not feelings

4. Pink hoodie

5. Flowers 

6. Just another girl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