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대의 도파민 폭격 'Supernova'의 공세는 매서웠다. 둔탁하게 몰아치는 베이스와 날카롭게 세공된 전자음이 아찔한 자극을 양산하는가 하면 사운드 소스의 점층이 빛난 다채로운 구조는 이를 최첨단의 희열로 인도했다. 에스파라는 그룹이 추구하는 미학의 궁극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곡이었다.
선공개곡의 위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다소 무난한 감이 없지 않으나 타이틀 'Armageddon'의 도파민 수치 또한 인간계의 기준을 가뿐히 상회한다. 더불어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고 곡조의 선이 분명한 덕에 화려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안정된 진행을 보여준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강렬한 소리에 숨겨진 그룹의 주요한 성과다.
남은 전반부의 기조는 확장이다. 'Savage'의 쇠맛을 매끄럽게 정렬한 'Set the tone'은 'Salty & sweet'부터 이어진 신(新)문법의 완성을 알리고, 디지털의 건조한 인상을 미니멀리즘으로 연결한 'Mine'과 캐치한 멜로디로 아날로그의 곡선미를 강조한 'Licorice'는 각각 자체 방법론의 한계로 돌진한다. 다양한 표현 방식이 돋보이는 효율적인 영역 전개다.
폭발적인 전반부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청취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가사 배치에 있다. 노랫말을 음성 단위로 쫀득하게 이어 붙이면서 듣는 재미를 극단적으로 부각하고 이를 거듭 자연스럽게 깎아내어 부담을 최소화한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구조에 어색함이 없는 것도, “잔인한 Queen이며 Scene이자 종결” 같은 만화적 수사가 되레 짜릿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토록 섬세한 구성 덕분이다.
정체성 강화와 음악적 확장을 꾀한 전반과 달리 이후 절반은 정통성 강화와 범용성 확장에 할애한다. 각각 레드벨벳의 여름과 겨울을 닮은 'Bahama'와 'Prologue', SM식 발라드의 정석을 따르는 '목소리'에서처럼 특유의 금속음 대신 소속사 선배들의 편안한 색채를 끌어오며 보편적 설득력을 조준한다. 비교적 유사도가 덜한 나머지 트랙 또한 마찬가지. '시대유감'의 리메이크로 포석을 놓은 팝 펑크 트랙 'Live my life'는 초기 소녀시대의 청량한 감성을 공유하고 기계 부품이 잔뜩 달린 'Long chat (#♥)' 역시 앞선 'Thirsty'와 동일하게 레드벨벳풍의 멜로디를 곡의 토대로 한다. 이토록 높은 유사성이 정체성 결여로 해석될 여지도 있으나 레퍼런스 사용의 정당성이 분명하고 곡 본연의 매력이 충분하기에 대체로 불쾌하지 않다.
파괴적인 타이틀, 걸출한 킬링 트랙, 다양한 즐길 거리까지, K팝 정규 앨범에 기대하는 대부분을 충족한 모범적인 작품이다. < Savage >의 금속 타격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후반 기조에 아쉬움을 표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를 통해 얻어낸 범용성이 너무나 달콤하다. 신세대 인공지능부터 쇳독 보유자까지, 모두가 사랑할 만한 작품이 기적처럼 태어났으니 말이다.
-수록곡-
1. Supernova [추천]
2. Armageddon [추천]
3. Set the tone [추천]
4. Mine
5. Licorice [추천]
6. Bahama
7. Long chat (#♥)
8. Prologue [추천]
9. Live my life
10. 목소리 (Mel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