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인터뷰

윤도현밴드(YB)

by 박승민

2024.09.15

암을 이겨낸 윤도현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YB의 2024년 전국 투어 < LIGHTS ; INFINITY > 및 국내외 각종 페스티벌 무대, 10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 광화문연가 > 시즌 4, MBC FM4U 라디오 < 4시엔 윤도현입니다 >까지, 멀티 엔터테이너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행보다. 대한민국 대표 록커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는 치열한 노력이 엿보인다.

과거 이즘에서 진행했던 세 차례의 인터뷰가 YB 멤버들과 함께였다면 이번에는 상암 MBC 사옥에서 윤도현을 단독으로 만났다. 촘촘한 스케줄과 투병 이력에도 흔들리지 않은 밝고 스스럼없는 모습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한창 작업 중이라는 새 EP에 대한 힌트도 들을 수 있었다. 장르는 그간 디스코그래피에서 본격적으로 시도한 적 없는 메탈.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며 짓는 미소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올해 여러 페스티벌에 걸쳐 왕성히 무대를 서면서도 뮤지컬과 라디오 역시 함께하고 있다. 이러한 병행에 이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데뷔했을 때 김민기 선생님 덕분에 뮤지컬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아쉬움이 많아 “나중에 한 번 더 기회가 오면 잘 해보아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계속하게 되었다. 라디오도 이문세 형이 휴가를 가신다고 해서 우연치 않은 기회에 < 두시의 데이트 > 대타를 맡은 게 쭉 이어졌다.

대중가수 활동만 하는 것과 뮤지컬 및 라디오를 병행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클텐데.
긍정적인 효과라면 무대에서의 소통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뮤지컬과 라디오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으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해오다 보니 관객들을 봐도 이제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있을지가 보인다. 사실 공연은 괜찮지만 라디오를 매일 준비하는 게 꽤나 힘들다.

윤도현이 생각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틀 뿐인데 청취자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매일 만나며 친구처럼 느낀다. 이런 심정을 잘 알게 되니 라디오를 듣는 분들을 위해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청취자들이 나와 프로그램을 아껴 주는 데에 가치를 두고 있다.

강행군인 만큼 관리 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쓸 것 같다.
뮤지컬은 그야말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일단 워밍업도 일반 공연보다 더 많이 필요하고 라이브니까 대사가 꼬였다가는 큰일난다. 무조건 3~4시간 전에 도착해 미리 입과 목을 푼 다음 노래를 전부 불러 보고 올라간다. 안 그러면 무대에서 실수가 생길 수도 있다. 가요 같은 경우에는 마이크의 위치를 바꿔 가며 조절할 수 있으나 뮤지컬은 그것이 불가능해 작게 부를 때에도 작게 한다는 느낌만 주지 입을 더 정확히 벌리고 소리를 눌러서 해야 한다. 발성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뮤지컬에서 배웠던 것들을 레코딩에서 사용하기도 하나?
별개의 영역이다. 다만 연출적으로 차용할 만한 것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무대 세트 구성이나 특정 장면에서 조명으로 극적인 효과를 내는 게 있다.

앞서 뮤지컬에 입문한 계기로 고(故) 김민기를 언급했다. 윤도현이 기억하는 김민기는?
너무 보고 싶은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머릿속에 선생님의 음성, 표정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에는 선배들을 통해 이야기만 전해들을 뿐이었는데 ‘살다보면’의 가수 권진원 씨의 학전 솔로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학전에서 연출을 맡았던 박광정 형님이 김민기 선생님께 “이런 친구가 있는데 한번 뭘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알려 주셨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생전 김민기가 윤도현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많은 분들이 김민기 선생님께 충고를 듣고는 했다. 속된 말로 욕 먹는 사람은 맨날 욕 먹는데, 교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거의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번은 배우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선생님의 ‘날개만 있다면’을 불렀는데 “노래는 도현이처럼 하라”고 말씀하셔서 몸둘 바를 모르고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선배들이 와서 “좋겠다, 우린 맨날 욕만 먹는데”하며 놀리기도 하고. 기교 없이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좋아하셨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윤도현의 보컬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곡을 꼽는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부르기 쉬운 곡은 하나도 없다. 무대 뒤에서는 “야, 이거 어떻게 다 부르지” 하다가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노래가 나와 매번 잘 끝내고는 한다.

록커지만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를 보내고’가 인기를 얻고, 월드컵 전에 ‘사랑 Two’가 확 뜨더니 다음에는 ‘오 필승 코리아’까지 가면서 너무 갑자기 유명해진 바람에 어릴 때에는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했다. 순식간에 거대해지니까 그것 때문에 부담이 생겨서 잘해야겠다는 마음만 있었다. 그러던 중 선배에게 “똑같이 오래 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가 귀에 잘 안 들어왔는데 어느 날부터 부담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그대로 오래 하니까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발라드 곡을 더 만들어야겠다는 욕망은 없다. 이미 충분하고 그 이상의 곡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 



메탈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메탈을 향한 시도도 그러한 생각의 표현인가?
메탈은 워낙 하고 싶었던 장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래시 메탈과 데스 메탈에 도전했으나 친구들이 연주를 못 해서 혼자만 좋아했다. 이후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가 도래하자 메탈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끊게 되었다. 그 전에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젠트(Djent), 프로그레시브 메탈 같은 세부 장르가 없었고 대부분 클래식한 메탈이나 스래시 아님 데스였으니까.

그래서 한동안 듣지 않다가 2019년쯤 우연히 유튜브에서 젠트라는 장르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대로 빠져들었다. 이후 5년 동안 메탈을 듣지 않은 날이 없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감상하기도 했다. 악기 구성, 복잡한 리듬, 그로울링 등 어려운 요소 때문에 몰입하게 된다.

* 젠트: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하위 장르. 7현 이상 기타와 저음역 위주, 화려한 기교의 연주가 특징이다.

즐겨 듣는 메탈 밴드를 말해 달라.
젠트는 아니지만 묵직하면서 메시지도 뛰어난 프랑스 밴드 고지라(Gojira), 프로그레시브 록에 트랩(Trap)을 결합한 미국 밴드 폴리피아(Polyphia)도 좋아한다.

메탈 앨범을 작업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우리 힘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타리스트 허준은 재즈부터 시작했고 이제 겨우 록까지 왔는데 갑자기 메탈 한다고 하면 미칠 거 아니냐. 베이시스트 태희 형도 그렇고 워낙 어려우니까 꼭 프로듀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해외로 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더라. 예전 레이니 썬에서 베이스를 치던 최태섭이다.

작업 이야기를 나누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메탈은 접니다”라고 말하더라. 너무 자신 있게 얘기하길래 속는 셈 치고 데모를 주고 한번 편곡해 보라고 했더니 금방 두 가지 버전을 들려줬다. 그때 진짜구나 싶었다. 최태섭을 통해 알게 된 수준급 메탈 기타리스트 두 명을 추가로 섭외해 현재 다섯 곡 정도 만들었다.

바야흐로 K팝의 시대다. 메탈을 하는 것에 대해 “나만이라도 길과 결이 다른 음악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마음도 있는지?
그런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음악 하는 사람이 사명감과 책임감만으로 음악을 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단 공연을 할 때만큼은 책임감이 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몇 달을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삶을 사는 와중에도 공연을 보고 삶의 의지를 찾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공연만큼은 많은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암 때문에 술담배를 다 끊은 이후로 컨디션도 좋은 상태다.

최근 한일 합작으로 열린 ‘라우드 브릿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나름 좋은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와 관련해 일본 밴드 신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검엑스의 프론트맨 이용원 덕에 일본 밴드 신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제안으로 라우드 브릿지에 선 후 일본 밴드들의 색깔과 실력, 베테랑 스태프들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연합 공연을 하고 나니 확실히 일본 밴드 신이 풍성하고 좋은 밴드도 많다는 게 보이더라.

전주얼티밋뮤직페스티벌(JUMF) 때도 러브바이츠(LOVEBITES)라는 일본 여성 메탈 밴드가 있었는데 종합경기장 철거를 앞두고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기가 막힌 연주를 선보여 놀랐다. 라우드 브릿지 재팬에서도 우리 음악이 다른 펑크 밴드들과는 다른데도 호응이 좋아 즐거웠고 공연 후 다른 밴드들과 교류하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움직임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이용원이 정말 잘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시작인 ‘러브칩스’ 페스티벌도 조금 급하게 진행됐지만 콜드레인(coldrain)과 크로스페이스(Crossfaith), 퍼피(Puffy) 모두 잘 하는 팀들로 꾸려 라인업이 괜찮다. 이렇게 환경을 키워나가면 한일 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질 것 같다. 올해가 관건이다. 수지타산을 신경 쓰지 않고 잘 만드는 페스티벌이 되어야 해서 지금 많이 열심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근래 국내에서도 페스티벌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마니아 입장에서는 음향적인 측면 등에서 일본에 비해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 공연을 마친 뮤지션 입장에서 비교되는 점이 있다면?
정말 많다. 좋은 무대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음향이나 조명을 잘 하는 팀들이 한정적이고 그들이 안 된다면 차선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스티벌 차원에서 생각할 내용이지 아티스트가 뭐라고 할 건 없는 거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윤도현만의 비결이 있는가?
다행히 YB는 엔지니어, 콘솔을 모든 행사에 대동한다. 대학 축제를 다니던 시절부터 리허설을 2시간씩 하고 나서도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바뀌어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찰나에 이전부터 함께하던 엔지니어 권혁준에게 매번 함께 일해보자고 한 이후로 쭉 그러고 있다. 전날 미리 콘솔을 설치한 후 준비해두고, 리허설도 매번 오전 10~11시에 하고 있다. 맨날 마지막 공연이어서 기다리다 또 공연하고 끝나고 내려오고, 이렇게 산 지가 이제 20년 됐다.

힘은 들겠지만 아쉬움은 덜할 것 같다.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음향이 좋지 않은 페스티벌에서도 따로 사운드를 잡으니까 기본은 나오게 된다. 또 일본 팀들은 조명을 모두 따로 준비하는데 확실히 다르더라. 일본 공연을 계기로 요즘에는 조명 스태프도 함께 다닌다.

일본 공연 시 세트리스트는 한국이랑 비슷하게 구성하는가?
거의 비슷하나 유명 히트곡들은 잘 하지 않는다. ‘사랑 Two’ 같은 국내 히트곡은 이를 알 만한 관객이 있을 때만 연주한다. 라우드 브릿지는 워낙 분위기가 신나고 격한 만큼 우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런 곡으로 준비한다.



최근 SNS에서 ‘사랑했나봐’ 피아노 버전에 곰돌이 푸가 춤을 추는 밈이 유행했고, 과거에는 < 짱구는 못말려 >에 곡이 수록되며 젊은 세대에게도 한결 친숙해졌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재미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고 맥락도 아예 없지만 주변에서 체감도 되니 흥미롭다. 참고로 SNS 밈에 재녹음본이 쓰인 것은 유통사 쪽 문제로 인스타그램 음악에 원곡이 아닌 2016년 재녹음이 올라와 있어서 그렇다.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도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니 “왜 이게 없지” 하며 종종 아쉬울 때는 있다.

LP 붐이 불면서 가요계에서도 과거 음악을 재발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데 윤도현의 음악은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LP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향후 발매 계획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사회에 컨텐츠와 정보가 범람하자 오히려 나만 소유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나타나며 LP 붐이 인 것 같다. 나 역시 휴대용 LP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며 캠핑 때 듣고는 한다. 곧 발매할 메탈 앨범도 한정판으로 몇 장만 찍을 계획이다.

윤도현은 리메이크도 열심히 하는 가수다. ‘담배가게 아가씨’, ‘크게 라디오를 켜고’ 등 선배들의 음악을 커버하는 일이 윤도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선배들이 없다면 나도 없다고 항상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계속 음악을 하시던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계속 가지고 있다. 지금 공연 프로그램 중 ‘단짠라이브’도 그러한 사고의 일환이다. 예전부터 < 나는 가수다 >의 ‘Run devil run’ 등 아이돌 곡을 우연찮게 많이 하다 보니 그 해의 핫한 여자 아이돌 곡을 록으로 편곡하고, 선배님의 곡은 편곡 없이 그대로 공연한다. 일종의 오마주다.

여태까지 수많은 곡을 리메이크하면서도 넥스트와 신해철의 음악을 잡은 적은 없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곡이 있는가.
‘민물장어의 꿈’ 좋지 않나. 그런데 둘이 너무 친한데다 동료 느낌도 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 그간 하지 않았었다. 해철이 형이 이렇게 빨리 세상을 뜰 줄 몰랐기도 했고.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윤도현이 데뷔 초기 주연으로 나온 1996년 영화 < 정글 스토리 >의 영화음악을 신해철이 맡은 인연이 있다.

지난 2005년 이즘이 진행한 ‘이시대 뮤지션 33인이 뽑은 나의 명곡 15’ 프로젝트에서 도어즈의 ‘Riders on the storm’을 맨 처음으로 꼽았다. 그렇다면 도어즈나 짐 모리슨에게서 영향받은 점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음악은 내 음악이다. 별개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도어스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왜 당신의 음악에는 도어스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도어스는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것이지 내가 도어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들처럼 음악을 하는 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게 나름대로의 음악 철학 중 하나였다.

내 음악이 어리숙하게 들려도 내 것을 하자는 주의가 이전부터 있었다. 스무 살 때도 다들 인기 가수들만을 복제하니까 “왜 저렇게 뭐만 하면 다들 따라하나”라 느끼고는 했다. 여전히 도어스를 찾아 듣고 또 팬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고 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진행: 임진모, 염동교, 박승민, 정기엽, 한성현
정리: 박승민, 염동교, 한성현
사진: 정기엽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