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K팝 동향조사] '슈퍼'히트곡 'Supernova'의 K팝 정복기
에스파(aespa)
바야흐로 K팝 전성시대다. 올해는 유난히도 자극적인 이슈와 기록적인 성과가 수면 위로 앞다투어 떠올랐다. 연일 차트와 기록을 갈아치우며 문화콘텐츠 수출 공신이자 한국 알리미로서 K팝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숫자가 전부일까? 분명 그 아래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음악적 담론도 존재하고 K팝의 다양한 발전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다. 이즘에서는 이러한 취지에서 2024년 K팝을 둘러싼 여러 사건의 배경을 분석하고, 조명받았던 음악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탐구하는 기획특집 [2024 K팝 동향조사]를 준비했다. 두 번째는 ''슈퍼'히트곡 'Supernova'의 K팝 정복기'다.
2024년 뮤직 키워드는 ‘Super’라 할 수 있다. 뉴진스, 있지, 이채연, 심지어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트로이 시반까지 ‘Supernatural’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프로미스나인의 ‘Supersonic’, 여기서 다루는 K팝과는 영역이 살짝 다르지만 영탁은 ‘슈퍼슈퍼 (Supersuper)’, 그리고 아이브는 세계적인 DJ 데이비드 게타와 ‘Supernova love’로 합을 맞췄다. ‘Super’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오아시스가 재결합한 것까지, 정말이지 우연 같은 운명의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사례들의 정점에 선 곡이 바로 에스파의 ’Supernova’다.
데뷔곡 ‘Black mamba’와 함께 2020년대 4세대 걸그룹의 포문을 연 신인 에스파는 ‘Next level’과 함께 K팝 주요 아티스트 지위로 올라섰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빠르게 부상하던 메타버스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가상 현실 속 아바타를 활용한 세계관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큰 주목에는 큰 기대가 따른다고 했던가. 빠른 기세로 몰아붙이던 음악은 초기 화제성에 비해 조금씩 가라앉았고, 대중성이 떨어진 콘셉트는 소비 기한을 맞이했다. 코로나, 원격, 가상이라는 시대의 물결에 올라탔지만 그 물살 그대로 유행의 하류로 흘러갔다.
이제 메타버스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가상 세계는 사라졌고, 현실만이 남았다. 미니 2집 < Girls > 내놓았지만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현실에서조차 생존 경쟁에 시달려야 했다. 좋은 음악. 에스파에게 남은 길은 뮤지션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 변화를 거듭한 < My World >, < Drama >를 거쳐 차츰 반등의 기회를 노린 에스파는 올해 < Armageddon >을 공개하며 가상과 현실의 존폐를 앞둔 종말의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끝없는 가상 세계가 아닌 드넓은 우주에 자신의 별 하나를 띄운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SM엔터테인먼트 프로덕션의 결단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선택, SM 컬쳐 유니버스(SM Culture Universe)라는 확장된 세계관에 대한 집착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소속 가수들을 한 데 묶는 이 개념과 함께 에스파가 탄생했지만 끝내 설득력을 잃었다. 회사의 대내외적 이유도 물론 있지만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데뷔 초부터 밀어붙이던 ‘광야’를 빠져나와 이제야 본격적으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SM 뮤직 퍼포먼스(SM Music Performance)도 빼놓을 수 없다. 작곡가 유영진을 필두로 하는 SM엔터테인먼트만의 고유한 음악 스타일과 분위기를 일컫는 말로 사방팔방으로 채워진 밀도 있는 사운드를 퍼포먼스로 승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엑소 ‘Mama’, NCT 127 ‘Cherry bomb’, 에스파의 여러 타이틀 곡을 떠올리면 쉽다. 장르로 정의하기도 애매한 이 방식을 에스파가 전적으로 활용하며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음악적 중심을 세운 상태에서 시기적 얼개 또한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작년에 이어 올해 초까지만 해도 K팝은 뉴진스에 이어 비비 ‘밤양갱’이 보여주는 이지 리스닝, (여자)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가 영향받은 J팝, 실리카겔과 데이식스로 대표되는 밴드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흔히 ‘쇠’ 맛이라 불리는 에스파의 ‘슈퍼’사운드다. 기계적으로 가공된 미래적 사운드로 가공할 만한 위력의 빅뱅을 일으켰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앨범 대량 구매 후 폐기하는 등의 문제로 환경 오염이 대두된 최근 상황에서 CD 재생기를 앨범으로 구성하여 기념비적인 첫 정규작의 기획을 획기적으로 이뤄냈다. 미적, 실용적 측면은 물론 준수한 성능까지 자랑한 패키징이었다. 환상적인 특수 효과와 무채색 질감이 펼쳐지는 ‘Armageddon’ 뮤직비디오도 성공을 견인하며 에스파의 강철 같은 매력을 담아냈다. 실리카겔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멜트미러 감독이 ‘Whiplash’를 맡으면서 감각적인 비디오가 다시 탄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돌고 돌아 음악이라는 것이다. 돌고 돌 필요도 없다. 가수에게 좋은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 아닌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확장된 세계관과 함께 나락에 빠졌지만, 에스파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즌 2를 맞이했다. 둘의 차이는 완성도에 있다. 온몸의 체중이 실린 회심의 원투 펀치 ‘Supernova’와 ‘Armageddon’이 제대로 꽂혔다.
2022년부터 시작된 걸그룹 전성시대가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나가는 요즘 최종 승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K팝을 음악 하나로 판가름하기 힘들지만 결국 음악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직 산업적 숨이 붙어 있을 때 예술적 숨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 중요한 임무를 올해는 에스파가 해냈다. 해를 두 번 넘긴 별들의 전쟁에서 2024년 승기는 ‘Supernova’가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