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계보에 있어서 그룹 넥스트 이후로 주류의 정상에 올라선 팀은 윤도현밴드다. 비록 서태지나 신해철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나 여타의 장르를 압도하는 광범위한 인지도는 확보하고 있지 못해도, 분명 이들은 나약하게나마 현 한국의 이름 있는 밴드들을 제치고 챔피온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건, 밴드를 하려는 윤도현의 의지와 그간 음악계에서 거둔 록의 일천한 승리를 자신들의 품고 가려는 <소외>, <한국 록 다시 부르기>와 같은 앨범이 이루어낸 성과 때문이며 그에 걸맞는 밴드의 정체성을 심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와 같이 의도된 느낌을 주는 음악보다 솔로 1집을 팬들이 더 좋게 기억하는 것은, 음악이 뮤지션 자신의 자아를 완벽하게 재편했을 때 나오는 감동에 대한 청자가 느끼는 공감대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은 편하게 만들어지고 즐겁게 연주한 곡들을 더 좋아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의 밴드들은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사명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누구를 위한 음악을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기획사의 짜 맞추어진 아이템으로 승부 하는 것이 아니라 팀컬러가 주는 생명력으로 몇 십 년을 장수할 팀이라면 말이다. 2집 이후로 밴드의 개념을 가지면서 윤도현밴드는 투사 같은 이미지로 록밴드의 이상을 그려가고 있지만 작곡가 개인의 사상을 담아 내는 것도 결국은 궤를 같이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음악은 윤도현밴드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봐도 좋다. 간간이 디지털의 조정이 풍기는 가운데 허준의 기타는 전적으로 팀 플레이의 안정적인 기반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그 간에 붙은 공연의 이력이나 DJ로서의 경험 때문인지, 윤도현의 목소리는 호소력과 유연한 자신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영화 <박하사탕>의 향수를 그대로 전하는 '박하사탕'이나 1집의 감성을 약간 느끼게 해 주는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가 인기를 끌 확률이 높지만, '내게와 줘', '거울', '그대로' 등도 대중들과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곡들이다. 편곡을 약간 달리 한 김민기의 뮤지컬 <개똥이>이의 삽입 곡 '도대체 사람들은'과 다시 부른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반미적인 시각을 드러낸 '하노이의 별'과 같은 사회성에 고리를 연결한 곡들 역시 기존의 거친 표현력에서 한발 물러나 객관적인 거리가 느껴진다.